Movie2017. 12. 28. 16:03
<1987> 간략 후기

몇 달 전에 <덩케르크>를 올해 최고의 영화로 뽑았었는데 수정해야 할 것 같네요..

이성적 최고의 영화는 덩케르크.
감성적 최고의 영화는 1987.

감히 평론할 수가 없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기고 때문에 써야 하긴 하겠죠.

못 보신 분들은 

시간 내서라도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Posted by AC_CliFe
Movie2016. 11. 5. 12:23

허삼관 



- 하정우

 

 


 필자는 학교 교양 수업 중 반 이상을 문학 수업으로 채운다문학이 좋기 때문이다높은 평점은 덤. 1학기 때 문학 교양 수업을 듣던 중 허삼관 매혈기라는 작품의 발표를 들었다중국 위화의 작품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하지만 읽지 않았다시간이 없다는 핑계 같지 않은 핑계와 함께.. 발표를 들어보니 꽤나 흥미가 가는 이야기였다피를 파는 사람의 찡한 가족이야기하지만 관심도 잠시바로 기말고사 준비 모드에 들어갔다.

 


 종강 후교수님께 메일을 썼다.

이번 강의에서 교수님이 추천하는 문학 3작품은 무엇입니까?”

교수님께선 첫째로 허삼관 매혈기를 꼽으셨다이유는 재미.

 


 여름방학에 들어가자기나긴 봉사활동을 가기 전구립도서관에 가서 허삼관 매혈기를 접했다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책을 읽으면서 그야말로 미친 감정변화를 겪었다이 작품은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져도 될 정도라고 생각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연극으로는 만들어 졌다고 했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던 작품위화 작가의 스토리텔링 방식도 기억에 남았다.

 


 그 후 허삼관 매혈기 (이하 허삼관는 점점 내 머릿속에서 잊혀졌다그냥 일하면서 학교 다니면서 하다보니 뭐.. 허삼관을 읽은 후 몇 주가 지났나.. 한 연예기사를 봤다허삼관이 영화로 만들어 진다는 내용이었다감독은 하정우였다하정우롤러코스터../ 매니아틱한 감독 하정우의 영화과연 허삼관 매혈기를 제대로 영화화 할 수 있을까기대했던 허삼관의 영화화인데 감독을 보고 기대가 걱정으로 변했다.

 


 걱정을 품은 채 영화관에 들어섰다다 보고 난 후의 생각은 역시 감독 하정우.. 배우로서 하정우의 역량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연기력 측면에서는 정말 좋았다하지원의 연기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일락 이락 삼락 또한 마찬가지그러나 감독으로서 하정우의 역량은 너무나도 아쉬웠다허삼관의 스토리 그대로 밀고 나간 배짱은 칭찬할 만 하다해외문학 판권을 사면 대부분의 영화는 한국식으로 각색돼서 나온다결과는 망.. 퀄리티가 더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그러나 하정우는 한국식 각색을 거치지 않고 나왔다여 타 영화와 특이점을 두고 괜찮게 재현해서 위화의 허삼관을 접하고 본 필자 입장에선 보기 좋았다.

 


 또한 영화 초반 간간히 느껴지는 하정우 만의 개그도 좋았다롤러코스터 식 개그라 할까아니다롤러코스터 식 개그는 매니아 틱하지만이번 개그는 롤러코스터 식 개그를 좀 더 대중적으로 바꾼 것 개그였다공감할 수 있는 재미였다하지만 장점은 이게 다....... 라고 생각한다.

 


 우선 감독의 배우 활용이 아쉬웠다역량이 뛰어난 조연배우들이 많이 나왔다하지만 그들의 롤은 한정됐다그것도 너무 지나치게.. 영화 초반에만 그들의 모습이 두드러졌다조연배우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줬다하지만 초반 이후 그들은 스크린에서 보이지도 않았다과장 조금 더 해 하지원하정우일락이만 나왔다캐스팅은 좋았다하지만 캐스팅만 좋았다그들을 좀 더 활용해 봤으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감정문제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위화의 허삼관을 읽을 때는 감정이입이 잘 됐다웃기고 울리고 웃기고 울리고독자들을 잘 꿰뚫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나 하정우의 허삼관은 그들만 웃고 울고 웃고 울었다안타깝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이러니 관객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영화의 전개에서 비롯된 문제였다보통 시나리오는 기승전결의 구성을 따른다하지만 허삼관을 봤을 때는 기승전결의 구성이 아닌 초반후반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뉜 느낌이 들었다초반 1시간은 조연들과 잘 어우러져 재미있고 웃긴 영화를 잘 만들었다그러나 후반 1시간은 갑자기’ 울었다물론 관객이 아닌 배우들만영화의 맥이 뚝 끊긴 느낌이 들었다보기 불편했다. 1시간은 웃기고, 1시간은 울리려고 시도만 하니..

 


 아.. 너무 아쉽다나쁘지 않았던 주변의 평범접할 수 없는 위화의 허삼관필자의 기대감을 증폭시킨 두 요인.. 차라리 위화의 허삼관을 보기 전에 하정우의 허삼관을 먼저 봤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그러면 아쉬움을 덜 느끼지 않았을까갑자기 한 사람이 원망스러워진다.허삼관 매혈기를 추천한 교수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Posted by AC_CliFe
Movie2016. 9. 3. 19:18

멋진 하루 


- 이윤기

 


 영화의 끝을 알리는 전도연의 미소. 그 미소는 스크린을 넘어와 필자의 얼굴에 전이됐다. 엔딩크레딧이 지나갈 때 까지 이 미소는 필자의 얼굴을 떠나지 못했다. 기나긴 여운을 안겨준 전도연의 미소, 그리고 ‘멋진 하루’였다.

 


 ‘멋진 하루’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연인관계였던 하정우와 전도연, 전도연은 연인시절 빌려줬던 돈 35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하정우를 찾아간다. 하정우가 이 350만원을 갚기 위해 전도연과 함께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멋진 하루’의 스토리다.

 


 스토리만 보면 이 영화 자체가 단순하다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멋진 하루’는 스토리‘만’ 단순하기 때문이다. ‘멋진 하루’의 매력은 단순함 속 복잡함이었다. 이건 또 무슨 역설적인 소리인가? ‘멋진 하루’를 만든 두 가지의 복잡함, 바로 하정우와 전도연이었다.


 

 하정우. 극 중에서 그는 표면적인 복잡함을 보여줬다. 그의 여자관계였다. 하정우는 전도연에게 빌린 돈 350만원을 갚기 위해 자신과 인연이 있었던 혹은 인연이 있는 여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현금 돌려막기를 통해 350만원을 다 갚는다. 사실상 그의 복잡한 여자관계가 ‘멋진 하루’의 표면적인 스토리를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만나는 여자의 특성에 따라 극 중 흐름이 좌우되고, 극의 에피소드가 구성되고, 극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전도연. 극중에서 그녀는 이면적인 복잡함을 보여줬다. 그녀의 감정선이었다. 극 중에서 전도연의 감정선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정우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감정선과 하정우라는 존재를 통해 느끼고 픈 감정선이었다.

 


 전자는 말 그대로다. 전 애인이었던 그놈(하정우). 돈을 안 갚고, 연락까지 끊은 그 놈. 그 놈을 처음 보면 어떻겠는가?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겠는가? 전도연은 그 놈을 만나고,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차가움’이라는 감정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극이 흐를수록 전도연의 감정선에 변화가 일어났다. 350만원을 수금하러 다니면서, 그 놈과 과거의 추억을 공유했다. 현재의 떨림도 느꼈다. 하정우라는 존재 그 자체에게 ‘따뜻함’이라는 감정선을 느낀 것이다. 350만원 수금작업이 끝나고 떠나보내면서 짓는 전도연의 미소가 이 ‘따뜻함’을 드러냈다.

 


 후자는 숨겨진 것 이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전도연이 하정우라는 존재를 통해 느끼고픈 감정선은 치유, 그리고 사랑이었다. 극 중에서 전도연은 하정우와 헤어졌었다. 하정우의 물질적인 ‘가난’이 싫었기 때문이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다른 남자를 만났다. 물질적인 가난과 무관한 남자였다. 그러나 그에게선 감정적인 ‘가난’이 나타났다. 사랑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녀의 가슴에는 상처만 남았다. 사랑에 대한 갈증도 남았다. 이 상처와 사랑의 갈증을 치유하기 위해, 찾게 된 대상이 전 애인 하정우였다. 전도연의 이러한 두 개의 감정선은 ‘멋진 하루’의 시작과 끝을 책임 진 복잡함이었다.

 


 ‘멋진 하루’가 필자의 극찬을 받은 것은 이러한 역설적인 매력 뿐 만이 아니었다. ‘멋진 하루’만의 느낌 또한 필자를 사로잡았다.

 


 ‘멋진 하루’의 느낌은 다른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스러운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돈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한 것도 그렇고, 돈을 갚으러 여러 여자들을 쑤시는 하정우의 뻔뻔함도 그렇고, 사랑의 아픔을 잊으러 전 애인을 찾아온 전도연의 쪼잔함도 그렇고……. 한국스러운 정서의 조합으로 빚어낸 ‘멋진 하루’였다.

 


 ‘노팅힐’을 보고 난 후에도 필자는 여운을 느꼈다. 그때의 여운은 황홀의 여운이었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 사이의 사랑의 완생이 황홀을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멋진 하루’의 여운은 미묘하게 달랐다. 이때의 여운은 잔잔함의 여운이었다. 하정우와 전도연의 감정의 부스러기들에서 흘러나온, 사랑의 미생이 잔잔함을 안겨다 주었다. 언젠가 잔잔함을 느끼고 싶을 때,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찾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Posted by AC_CliFe
Movie2016. 8. 31. 12:34

아가씨


 - 박찬욱


 


 감독 박찬욱을 거장 박찬욱으로 만들어준 그만의 비기, ‘모호성’이다. 그의 작품들은 신비롭고 신선했다. 신비로움, 그리고 신선함에서 피어나는 모호성은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박찬욱만의 독창적 여성 서사의 시작을 알린 <친절한 금자씨>가 그랬다. 박찬욱에게 칸의 영광을 안겨준 올드보이도 그랬다. 자연스레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의 모호성에도 기대를 품게 됐다. 하지만 <아가씨>의 모호성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를 보여줬다. 박찬욱 감독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다양하게 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그것의 적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1. 사랑의 모호성

 

 사랑은 내면에서 우러나온다. 내면에서 발현된 사랑의 감정이 외면적으로 발산될 때 사랑은 비로소 완전함을 이룩한다. 즉, 내면의 감정은 완전한 사랑의 전제조건이다. 김태리의 사랑은 이 전제조건에 충실했다. 일본인 귀족이라는 김민희에게 신선함을 느낀다. 신선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억압된 그녀의 삶에 연민을 느낀다. 그녀의 고통을 같이 통감하며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그녀를 보살펴 주고 싶다는 모성으로 발전한다. 느낌의 조화가 김태리의 사랑을 만들었다. 하지만 김민희의 사랑은 김태리의 사랑과 달랐다. 김태리에게 어떻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김민희만의 내면의 사랑이 영화에 표현되지 않았다. 심리적 개연성의 부재가 발생했다.

 

사랑의 불완전한 전제는 필연적으로 사랑의 불완전한 결과를 가져왔다. 사랑의 발산 격인 그녀들의 ‘섹스’는 불완전했다. 불완전한 섹스는 사랑의 모호성으로 직결됐다. 그녀들이 원했던 것은 내면의 발현에서 비롯된 완전한 사랑일까. 동물적 접근에 입각한, 원시적 욕구에서 파생된 불완전한 사랑일까. 관객들이 ‘포르노’라는 악의적 표현까지 입에 담으며 <아가씨>를 혹평하는 이유는 이 ‘사랑의 모호성’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닐까 사료된다.



2. 스토리와 미장센의 모호성

 

감독 박찬욱의 트레이드마크. 탁월하게 아름다운 그만의 미장센이다. <아가씨>에서는 미장센에 유독 더 신경 쓴 모습이었다. 함께 <올드보이>라는 대작을 만든 류성희 미술감독과 함께했다. 그리고 스타일에 변화를 더했다. 전작들과 달리 조금은 밝고, 경쾌한 분위기였다. 특히 전반적인 영상미가 눈에 띄었다. 김민희의 낭독회 씬, 그리고 김태리와 함께하는 정사씬은 미장센의 대가다운 압도적 장면들이었다. 분명 <아가씨>의 미장센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줬다. 하지만 머리로는 즐길 수가 없었다. 스토리와 미장센 사이의 힘의 분배가 문제였다.


 <아가씨>의 스토리 얼개는 꽤나 신선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 반전의 이해를 돕기 위한 3부작 구조. 박찬욱 작품답지 않은 즐거움과 깔끔한 결론까지. 하지만 얼개를 쌓아가는 과정은 다소 아쉬웠다. 반전에 반전 스토리가 버거웠던 것일까? 스토리 중심의 개연성은 조금씩 떨어졌다. 스토리의 태도에 있어서도 일관성이 없었다. 3부작 中 1부~2부 초중반은 너무나 불친절했다. 2부 종반부터 3부까지는 너무나 친절했다. 스토리에 들어갈 힘을 미장센에 주다보니 미장센이 감독의 과시적인 사족으로 느껴졌다. 스토리와 미장센 분배의 모호성이 빚어낸 사태다.

 

 

3. 주제의 모호성

 

 <아가씨>의 주제는 독보적이다.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완성하는 여성들의 사랑.’ 박찬욱 감독 본인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립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끌린다고 언급하면서 <아가씨>의 주제를 직접 암시했다. 이 주제는 그간 국내영화에서 볼 수 없는 독보적인 주제였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 주제는 단지 ‘어쩔 수 없는’ 주제였다.

 

 주제의 설득력이 아쉬웠다. 여성들의 주체성을 ‘성(性)’이란 코드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일까. 성을 상징하는 표상들이 즐비했다. 14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이 표상들을 일일이 나열하기에 급급했다. 주제라는 목적과 장치라는 수단이 전치 된 모습이었다. 주제의 설득력을 높이기에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주제의 명확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는 영화 종반부에서 두드러졌다. 영화 종반에는 두 시퀀스가 나온다. 조진웅과 하정우가 함께하는 지하실 시퀀스. 김민희, 김태리가 하는 정사 시퀀스다. 전자는 아가씨, 김민희가 당했던 억압과 폭력을 상징한다. 후자는 여성들의 주체성, 그리고 사랑을 상징한다. 극명히 대비되는 두 시퀀스를 통해 주제의 명확성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전자의 시퀀스는 억압과 폭력을 옹호하려는 남성들의 치졸한 변명으로 들렸다. 후자의 시퀀스는 주체성과 사랑이 아닌 ‘몸의 대화’에만, 인간의 근원적 욕구만 충족시키려는 것처럼 들렸다. 주제의 명확성이 아닌 감정의 불쾌함이 앞섰다.

 

 박찬욱 감독의 아쉬운 연출들이 주제의 독보성을 어쩔 수 없는 주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주제의 모호성으로 전락시켰다.

 

 

 모호성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어떤 개념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한계가 분명하지 않아서, 그 개념이 전하는 내용의 범위를 정확하게 규정지을 수 없음을 뜻하는 말.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모호성은 본질적으로 양면성을 띠고 있다. 이번 작 <아가씨> 또한 여타 영화들보다 확실히 신비롭고 신선했다. 하지만 기존과 달리 대중적 성격을 가미한 탓일까? 어색한 모호성이 주를 이뤘다. 모호성의 부정적 작용이었다. 감독의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탁월하게 아름답지도 않은, 매혹적이지도 않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였다.

Posted by AC_CliFe
Movie2016. 8. 25. 18:34

터널

 


 <터널>이 관객들을 사로잡는 이유재난영화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 아닐까.

기존 재난영화는 그저 신파그저 드라마몇 가지 공통된 공식을 고이 따라가는 형식을 지녔다.그래서인지 누구나 예상할 수 있고뻔한 결말로 이어졌다특히 국내영화는그러나 <터널>은 달랐다. ‘하정우라는 배우를 앞세워서 한국의 <마션>을 꿈꾼색다른 재난영화였다.

 

 

 <터널>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션>의 그것과 같이 유쾌하고 낙천적이다. <터널>에 갇힌 부정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타계하려 한다시종일관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 하정우의 드립들그를 뒷받쳐주는 오달수와 여러 조연들의 지원사격까지주인공이 과연 터널에 갇힌 상황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낙천성’ 이었다그리고 관객들을 속 시원하게 만드는 직설적인 풍자까지파란지붕에 거주하시는 한 여성분이 보면 마치 자기를 보는 듯 해서 얼굴을 붉힐 것 같은 맛깔 나는 풍자였다.

 


 하지만 위에 나열한 장점들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킨 안타까운 <터널>이기도 했다지루함과 늘어짐이 극한을 찍은 나머지 10분마다 한 번 씩 휴대폰을 끄적였을 정도풍자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영화적 개연성은 너무나도 허술하고 빈틈이 많았다터널에서의 시간은 순식간에 스킵된다단지 ㅇㅇ일 후 라는 무책임한 자막과 함께후반부의 대부분 시퀀스는 과장으로 뒤덮였다감동과 극적인 서스펜스로 연결되어야 할 과장이 오버와 억지로 보일 정도였다아무리 영화라지만그렇기에 하정우라는 배우가 마치 <더 테러 라이브>에서의 본인처럼너무나도 짊어질 짐이 많은 영화였다.

 

 

 <끝까지 간다>라는 걸작으로 충무로에 이름을 알린 감독 김성훈김성훈이라는 감독의 이름값에 큰 기대를 했던 탓일까세월호란 강한 링크를 가진 주제를 가지고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다음에는 평소의 본인만의 우직한 스타일을 그대로 가지고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