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2016. 8. 25. 18:44

부산행


- 연상호

 

 

 필자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다. 실사 영화와 달리, 지극히 유희에 중점을 둔 장르라 여겼다. 영화라는 매체가 전달해야 할 궁극적인 메시지를 내포하지 못한 장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고정관념을 부셔준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사이비>였다. 영화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이비 종교에 대한 맹목적 믿음의 폐해를 그린 애니메이션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소재라 큰 기대를 안 하고 봤었다. 하지만 사이비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과 이를 표현하는 탄탄한 연출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네 사회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회 비판적’ 애니메이션이었다. 이것이 연상호 감독과 필자의 첫 만남이었다.

 

 

 작년 여름 즈음에, 우리나라 첫 좀비 영화가 크랭크인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또한 큰 기대가 되지 않았다. 좀비물이라 쓰고 억지 감동이라 읽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오류를 범할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독이 연상호라는 점에서 일말의 기대감을 품게 됐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아닌 실사 영화. 그리고 좀비물이라는 새로운 시도. 연상호 감독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풀어낼지 호기심을 갖고 영화관에 들어섰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산행>은 Well-Made 영화였다. <부산행>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단연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압도적인 에너지였다. 부산행 KTX라는 좁고, 긴 공간에서 펼쳐지는 좀비와의 사투는 관객들의 긴장을 끊임없이 유도했다. 실제로 필자는 특수한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릴에 취해 영화 중반부까지 시계 한 번 보지 않고 영화에 몰입했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좀비들도 영화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보통의 장편 영화들은 완급조절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하강의 시퀀스를 삽입했다. 하지만 <부산행>은 달랐다. 중반부까지 계속적인 좀비의 등장을 통해 상승의 분위기를 유지했고, 영화의 서스펜스를 극대화했다. 스릴과 서스펜스를 위하는 연상호 감독의 효율적인 연출도 훌륭했다. <부산행>은 극의 진행에 필수적인 인물들로만 플롯을 구상했다. 이들의 과거 또한 일절 다루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부산행 KTX 이외의 지역에 대한 정보는 최소화했다. 관객의 포커스를 오로지 부산행 KTX에만 맞춘 연출을 선보였다. 근래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경제적인 연출이었다.

 


 하지만 중반부까지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탓일까? 후반부까지 이 에너지를 이어나가지 못한다는 것이 <부산행>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이었다. 중반부까지 극의 전개는 부산행 KTX처럼 빠르고 탄탄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평면적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개 속도는 급격이 다운됐다. 전개 방향마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다소 억지스러운 씬들이 난무하게 됐다. <부산행>의 뜨거운 감자, 신파 시퀀스 또한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신파 시퀀스는 <부산행>같은 영화를 위해선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부산행>에선 ‘딸’이라는 가족이 KTX에 함께 했다. 가족이 결합된 이상 신파 시퀀스는 영화에서 필연적으로 언급되어야 할 내용이었다. 연상호 감독은 신파 시퀀스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기존 영화들이 답습하던 오버랩과 플래시백의 남용을 최소화하여 신파의 비중을 줄이려 노력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산행 또한 과도한 신파극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신파 시퀀스의 전체적인 활용이 문제였다. 분명 단 하나의 플래시백을 활용해 신파 시퀀스를 구성한 것은 색다른 시도였다. 하지만 이 플래시백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체감시간이 너무나도 길었다. 시퀀스 전체의 내용도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BGM도 아쉬웠다. 조악한 감상 조장을 위한 시도는 불완전한 신파를 초래했고 이는 과도한 신파라는 지적으로 직결됐다. 또한 그간 연상호 감독이 자랑하던 사회 비판적 모습은 이 영화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국가의 위선을 폭로하기 위해 사용한 씬들은 받아들이기 어색할 정도로 인위적이었다. 좀비로 인해 싹튼 인간과 인간간의 윤리적 대립도 큰 공감을 이끌어내기 부족했다. 과정 없이 결과만 툭 던져놓은 듯한, 단편적인 모습이었다. ‘사회비판적’이라는 연상호 감독 본인만의 성격에 지나치게 집착했기에 나타난 결과였다.

 


 그래도 <부산행>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평한 이유, 역시 특유의 폭발적 에너지였다. <부산행>만의 넘치는 에너지는 필자가 지적한 아쉬운 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멋진 동력이었다. 좀비물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연출도 보기 좋았다. 국내에서도 이 정도의 높은 퀼리티 좀비물을 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몸소 증명한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매력으로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부산행>이었다.




PS. 하지만 <부산행>의 프리퀄, <서울역>이 더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PS 2. 안소희 연기는.. 발연기임은 분명했지만 좀비 연기에서 존재감을 드러냈기에 볼 만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베스트 연기자는 단연 '마동석'. 좀비인지 인간인지 분간이 안 되는 대체할 수 없는 그만의 캐릭터!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