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2016. 8. 27. 18:59

서울역

 

- 연상호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좀비물과 KTX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국내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그럼에도 <부산행>에선 몇몇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사회 비판적 메시지의 결여였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들은 영화 곳곳에 존재하였으나 그 내용은 선명하지 못했다. 사회비판적 작품을 만드는 데 도가 튼 연상호 감독이기에 아쉬움은 더욱 진하게 남았다. 하지만 이 아쉬움은 곧 기대로 변했다.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에서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감독이었다. <돼지의 꿈>, <사이비> 등에서 이를 입증한 바 있다. 그렇기에 <서울역>에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상호 감독은 필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기대를 상회하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서울역>에서 연상호 감독은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이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희망 또한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냉혹함, 인간의 적은 인간뿐이라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적나라하게 노골적으로 담아냈다.

 

 

 <서울역>은 표면상으론 좀비 애니메이션이다. 서울역 한 노숙자로부터 시작된 의문의 좀비화가 그 근방까지 퍼지는 과정, 그와 함께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그린 작품이다. 즉 좀비와 좀비화를 피하기 위한 인간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이면적으론 완전히 반대되는 의미를 녹여낸 애니메이션이었다. <서울역>은 좀비와 인간의 대결구도를 표현한 것이 아닌 인간과 인간과의 대결, 나아가 인간과 인간이 빚어낸 사회와의 대결구도를 표현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이러한 의도는 보편적 복지의 실현을 주장하는 사람이 피를 흘리며 절뚝이는 사람을 도우려 하지만 그가 노숙자임을 알아차리고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첫 씬부터 드러난다.

 

 

 <서울역>에서 좀비는 그저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욕망을 일깨우는 수단에 불과했다. 인간은 좀비들이 점령한 세상에서 생존 혹은 다른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인간은 이성이 아닌 감성만을 좇게 되고 사회는 질서가 아닌 무질서로 변모했다. 그 결과 인간의 적은 좀비가 아닌 인간이 됐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에 숨어서 물대포를 쏘아대는 경찰 및 군인, 그 속에서도 합심하기는커녕 각자의 생존에만 몰두하는 인간, 자신의 물욕과 욕정을 위해 좀비 떼를 무릅쓰고 혜선을 끝까지 추적하는 석규까지. 인간의 적은 좀비가 아닌 인간이라는 절망을, 인간이 빚어낸 사회에선 감성 젖은 희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좌절을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물론 <서울역>에서도 아쉬운 점은 여럿 있었다. 전문 성우를 쓰지 않은 탓에 어색하게 느껴진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너무나도 수동적인 여주인공 ‘혜선’,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 탓에 <부산행>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재미 등등.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자신만의 뚝심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서울역>이라는 극한의 사회 비판적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냈다. 영화를 본 지 며칠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머릿속에서 생생히 그려지는 무시무시한 작품,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이었다.

 

 

ps1. 마지막 반전은 인간과 인간의 대결구도를 적확하게 보여주는 <서울역> 최고의 씬이었다. 그 장면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ps2. <서울역>이 잊히지 않는 이유, 연상호 감독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자의 그것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헬조선’과 그대로 조응하기 때문이 아닐까?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