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2016. 9. 8. 09:16

책은 도끼다



박웅현(광고인) 저   


 

 인문학이 대세로 올라선 지금. 필자가 생각하는, 인문학을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수단은 ‘책’이다. 책을 통해 지성의 작가들은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메시지를 접한다. 만원의 기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는 물론 ‘정독’에 기반한 독서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다독’에 초점을 맞춘다. 많이 읽으면 장땡이라는 마인드다. 필자도 그랬다. 그저 활자 그 자체만 많이 보면 지식이 따라올 줄 알았다. 이런 마인드에 도끼질을 한 책이 바로 이 책, ‘책은 도끼다’이다.



 박웅현이 알려주는 깊이 들여다보기. 이것이 이 책의 모든 것이다. 단순하고 간단해 보일 수 있는 깊이 들여다보기. 하지만 필자가 깊이 들여다보기를 배우니 책 읽는 방식이 달라졌다. 발전해 책을 고르는 눈 까지 생겼다.

 

 

 박웅현 독서법의 핵심은 ‘문장’이다. 그는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천천히 소화한다. 문장 속 표현에 대해 놀라고, 문장 속 숨겨진 함의를 분석하고 되새긴다. 스토리 전체를 주목하는 게 아니라 문장의 개별성에 주목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이 독서법에 신선함을 느꼈다. 그간 스토리 중심, 주제를 중심으로, 즉 숲을 보는 느낌으로 책을 고르던 필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박웅현 독서법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문장 하나하나를 자세히 탐독해야하지? 전체를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지 않나?

 


 이제부터 필자의 이런 의문을 잠재운 생각을 ‘책은 도끼다’의 몇몇 파트를 소개해보겠다.

 


 첫째는 김훈이다. 김훈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널리 알려진 작가다. 특히 필사 하기 좋은 작가로 빠지지 않고 추천 받는 작가다. 간결한 문장, 숨겨진 함의, 무시무시한 관찰력, 생동감. 이것들이 김훈의 무기다. 사실 처음에는 김훈의 매력이 무엇인지 몰랐다. 필자가 무능한 탓에 그의 문장을 분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웅현과 만나고 다시 책을 피니 무언가 조금 씩 보이기 시작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고 되새기고 소화하며 책장을 넘겨나갔다. 이렇게 보니 문장 자체가 갓 잡은 생선인 듯 생생했다. 문장 자체가 활력이 넘쳤다.

 


 이러한 생생함의 비결은 치밀한 묘사, 그만의 압도적 관찰력, 그리고 의인화였다. 한낱 연필 하나도 그에게는 관창 대상이 되어 그 무엇보다 매력적인 사물로 재탄생한다. 이를 계기로 필자 또한 모든 사물을 의인화 해보며 한 두줄 정도로 요약하는 훈련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둘째는 지중해적 사고다. 지중해에는 해와 바다가 유별나게 빛을 뽐낸다. 항상 그 품위와 자태를 유지하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지중해 사람들은 이들의 유혹에 빠져, 여유와 풍요를 얻었다. 나아가 그들의 사고도 ‘지중해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박웅현은 그들의 사고를 지중해적 사고라 명명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자, 지금에 충실하자!’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혼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힘든 사고다. 이 사고를 잘 표현한 소설이 카뮈의 ‘이방인’이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죽음에도 태연하게, 변한 것이 거의 없는 내일을 생각한다. 어머니의 죽음에 미련을 두지 않는 오늘날의 사람들과 다른, 이방인의 모습이다. 이방인을 읽을 때 이 부분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불쾌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어떻게 자신의 혈육, 더구나 어머니가 죽었는데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지? 하지만 ‘책은 도끼다’를 접하고 지중해적 사고를 접하니 알베르 까뮈가, 그리고 이방인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없지만 그들을 비춰주는 해가 있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자연에 맡겨, 본능에 충실한 삶을 꿈꿀 환경이 마련 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 박웅현은 이 사고에 커다란 영감을 느껴, 자신의 삶의 방향도 지중해적 사고를 따르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필자라면.. 이 지중해적 사고에 동의하지 않았겠지만.. 이 이유는 글의 방향과 맞지 않으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안나 카레리나’ 파트다. 이 책은 필자의 기존 독서에 대한 의견을 완전히 뒤 바꿔준, 직접적인 역할을 한 파트다. 이 책들은 탄탄한 스토리, 작가의 범접할 수 없는 필력으로 무장한 ‘소설’ 들이다. 소설이다. 전체적인 스토리에 눈길이 향할 수 밖에 없는 장르다. 하지만 박웅현은 자신만의 ‘깊이 들여다보기’를 통해 이 책들을 독파했다. 그리고 증명했다. 스토리 중심인 소설일지라도, 숲이 아닌 나무를 보는 방식을 통해 더 명료하게, 더 부드럽게, 더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읽어냈다. 분명한 주제의식도 읽어냈다. 그리고 매력적인 문장들도 읽어냈다. ‘깊이 들여다보기’의 위력을 알 수 있었다. (훗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 파트를 더 자세히 다뤄보겠다.)

 


 다독에 취해있던 필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해준 고마운 책. 더불어 글로 먹고 살려하는 필자에게도 영감을 선물해준 책. 오랜만에 제대로 된 책을 읽어서, 그리고 훌륭한 책들을 소개받을 수 있어서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추천해준, 지금 필자와 같은 군인 신분인 동아리 선배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