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2016. 9. 5. 12:22

세상을 바로 읽는 진실의 힘 - 팩트체크

 

- JTBC 뉴스룸 팩트체크 제작팀

 

 

 지난 2014년 4월, 필자는 보도국으로 파견을 갔다. 왜 갑가지 파견을 보내냐 물었다. ‘인력부족’이란다. 이혼 이유를 ‘성격차이’라고 말하는 것과 동등한 빈도의 파견이유인 ‘인력부족’. 보통 때라면 반발을 했겠지만 필자는 군말 없이 파견을 받아들였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고성이 오갔다. 전화기는 끊임없이 울려댔다. 뉴스의 조연출을 맡은 필자의 발걸음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보도국의 하루였다. 오전부터 밤까지 이 상태가 지속됐다. 당시 편성 팀은 세월호 특집 뉴스로 채널을 도배했을 정도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뉴스의 빈도도 차츰 줄어들었고 보도국의 일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는 곧 필자가 보도국을 떠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예능국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 앵커를 맡고 있던 기자가 작별의 의미로 저녁 한 끼 같이 먹자고 했다. 저녁을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일상 얘기서부터 언론 얘기까지. 자연스레 뉴스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당시 필자는 뉴스 시스템에 직접적으로 참여해보면서 뉴스에 대한 불신이 피어난 상태였다. 뉴스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뉴스는 ‘궁극적으로’ 정보 전달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필드에서 느낀 뉴스는 ‘그저’ 정보 전달만 한다는 것 이었다. 그 정보들은 뉴스에서 리포트로 소개된다는 것만으로도 권위를 지닌다. 그리고 Fact라 불리게 된다. 물론 진짜 Fact인 정보들도 많았다. 하지만 필자가 목격한 대부분의 정보들은 뉴스라는 권위에 기댄, Fact가 아닌 Fake 였다. 사실전달을 배제하고 정보전달에만 치중했기에 발생한 문제였다. 이 논지를 앵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그도 결국 기자이기에 이 의견에 반박할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깊은 공감을 표했다. 유감도 함께 표했다. 너의 말은 맞지만 우리나라 뉴스 시스템상 모든 정보를 검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 한마디를 덧붙이면서. 뉴스에 대한 얘기는 흐지부지 끝났다. 그렇게 저녁식사도 끝났다. 이렇게 길고도 짧았던 보도국 파견도 끝나가고 있었다.

 


 예능국으로 돌아와 원래의 삶을 살고 있을 때, 위 앵커에게서 한통의 메일이 왔다. JTBC 뉴스9 (現 뉴스룸)에서 하고 있는 코너 ‘팩트체크’ 가 필자가 지적한 ‘뉴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팩트체크’라는 코너가 무엇이기에 타사 앵커가 추천까지 해주는 것 인가? 퇴근길에 다시보기를 통해 ‘팩트체크’를 접했다.

 


 사실 필자는 뉴스의 한계에 대해 앵커의 항변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다. 적은 시간 안에 양질의 리포트를 요구하는 우리나라 뉴스 시스템에선 진정한 팩트체크가 불가능 할 것이라 여겼다. 기술의 발달로 정보가 범람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또한 팩트체크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견지하는 데 한 몫 했다. 그러나 JTBC의 팩트체크는 이러한 필자의 생각에 스트레이트 한 방을 날렸다. 그들은 당최 불가능 할 것 같던 팩트체크 포맷을 방송이란 시스템 안에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한국판 ‘팩트체크’의 매력을 살리면서.

 


 팩트체크는 본래 정치인들의 공약 검증 수단으로 쓰였다. 미국의 지역지 <워싱턴포스트>는 정치인의 공약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피노키오를 주는 방식으로 ‘팩트체크’를 차용했다. JTBC는 이 팩트체크를 방송으로 구현하면서 콘텐츠의 범위를 확장했다. 정치인의 발언은 물론이고 경제적 오류, 생활에서의 잘못된 상식까지 다뤘다. 그러면서 팩트체크에서 체크하는 팩트들은 점점 쌓여갔고 책으로 집필되기까지 했다.

 


 팩트체크를 방송으로, 책으로 접하면서 느꼈던 것. ‘우리나라는 아직도 무서운 나라구나.’

정치인들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교묘한 발언을 한다. Fact를 Fake로 오인하게끔 한다. 정부는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통계의 함정을 이용한다. 그들의 주장은 권력과 권위에 가려 Fact로 인정받았고, 우리들에게 Fact로 각인됐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무서운 나라였다.

 

 

 우리나라의 저널리즘이 그래도 발전하고 있다는 것 또한 팩트체크를 보면서 느꼈다. 저널리즘을 전공하면서 우리나라의 저널리즘 현실은 너무나도 각박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해외의 그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현저했다. 언론과 정부의 관계가 문제였다. 각종 이해관계로 얽힌 언론과 정부는 서로의 요구에 응하면서 상호 협력적 관계를 유지했다. 그 결과 언론은 정부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팩트체크는 이러한 관계를 전면으로 부정하면서 등장했다. 그간 쌓여있던 정부의 과오를 적확하고 구체적으로 폭로하면서 ‘책임 저널리즘’의 발전을 주도했다.

 


마지막으로 느꼈던 것. 기자들이 단명하는 이유. 이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팩트체크는 진짜의 팩트만을 전달해 줌으로써 우리를 거짓된 정보에서 구원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팩트체크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따로 있었다. 대중들이 정보를 보다 능동적으로 수용하기, 즉 세상을 바로 읽는 진실의 힘을 길러주는 것 이었다. 한 번 더 생각하는 비판의식을 토대로 Fact와 Fake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의 진실을 가려내라. 이것이 JTBC 팩트체크 제작팀이 대중에게 전하고픈 궁극적 메시지였다. 수많은 소송과 재판의 위험이 도사리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진실만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실현해가고 있는 이상적 콘텐츠, JTBC의 <팩트체크>였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