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2016. 9. 4. 16:11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소설가) 저 


 

 혹자들은 말한다. "책은 한 번 읽는다고 읽은 게 아니다.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읽어야 한다." 요즘같이 책 안 읽는 분위기가 만연한 사회에서, 책 한 번 읽기도 벅찬데 두 번 읽으라고? 책을 한 번 더 읽는다고 큰 차이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지니며 살아온 필자였다. 하지만 이 책을 두 번째 읽으면서, 혹자들의 말이 진리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책을 바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다.

 


 필자는 이 책을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에 처음 접했다. 독서토론 동아리 회장에게 ‘알랭 드 보통’ 이라는 작가를 추천받았다. 더불어 이 책도 추천받았다. 그래서 읽게 됐다. 그 때도 이 책은 분명 흥미로웠다. 사랑에 알랭 드 보통이 더해지니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가슴속에 큰 울림이 느껴지지 못했다. 재미는 있지만 가벼운 느낌? 그렇게 이 책은 필자의 기억에서 차츰 사라져 갔다.

 


 지난주, 미국에 있는 여친과 통화를 했다. 군대에 있는 필자. 미국에 있는 여친. 이러한 특수한 환경 때문인가? 항상 전화통화를 하고 나면 공허함만 남는다. 그 날은 더 심했다. 한숨을 내쉬며 무의식적으로 도서관 컨테이너로 향했다. 그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필자와 여친이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 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서로 엇갈려있는, 어찌 보면 이상한 관계인데! 이러한 의문을 품으며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이 책의 소재는 ‘나’와 ‘클로이’의 사랑 이야기다. ‘나’와 클로이의 사랑의 시작부터 끝을 그린다. 사실 알랭 드 보통이 선택한 이 소재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재다. 한 커플의 시초와 종말을 담은 스토리. 그간 많은 사랑 관련 책들이 다룬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들에는 또 다른 문제점도 존재했다. 바로 추상의 구체화다. 사랑이라는 추상적 감정을 활자라는 구체적 언어로 표현 하는 것 이다. 대부분의 사랑 서적은 추상의 구체화에 실패했다. 현실의 사랑과 언어의 사랑에서 괴리감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즉 공감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알랭 드 보통. Dr. 러브였다. Dr. 러브는 알랭 드 보통의 별명이다.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적확하게 언어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별명을 얻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필자의 머릿속엔 이 별명이 다시 한 번 상기됐다. 과연 Dr. 러브였다. 위에서 언급한 두 문제점을 완벽히 상쇄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 책의 소재 사랑은 굉장히 진부한 소재다. 독자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예상이나 했던 것 일까? 알랭 드 보통은 사랑에 ‘철학’이라는 소스를 가미했다. 그러니 진부함이 새로움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사랑을 위해 많은 철학과 함께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했고, 비트겐슈타인과 함께했다. 마르크스도 함께했다. 뿐만 아니라 파스칼, 스탕달, 예수 등 역사적 인물들도 동행했다. 이들의 철학과 사상을 개별적으로 접하면 지루하고 딱딱하다. 그러나 사랑, 알랭 드 보통과 집합적으로 만나니 흥미로웠다 자연스러웠다. 철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녹여내는 알랭 드 보통의 능력이 드러난 책 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추상의 구체화에 성공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렇게 유쾌하고 위트 있게 풀어낼 수 있는 것 일까? 미친 듯 한 통찰력과 공감유도 능력이었다.

 


 사랑의 발단. 사랑하는 대상의 ‘이상화(理想化)’, 사랑하는 대상의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이면의 의미’. 사랑의 전개. 왜 나 따위를 사랑하는가? ‘마르크스주의’. 서로를 공유하는 우리, 그것의 확산 ‘친밀성’. 사랑의 위기. 익숙함에 취할 무렵 ‘마음의 동요’.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사이 ‘행복에 대한 두려움’. 피어나는 질투심과 이기주의 ‘낭만적 테러리즘’. 사랑의 절정. 왜 나인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심리적 운명론’. 죽음이라는 수단을 이용한 사랑의 불멸성 증명 ‘자살’. 사랑의 결말. 왜 우리는 그냥 사랑할 수 없는 것 일까? 불합리하고도 불가피한 사랑 ‘사랑의 교훈’.

 


 극단적인 사례가 종종 있어 아쉽긴 했지만 사랑, 그 일련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현실적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오죽하면 필자와 현 여친과의 과거를 회고하고,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상하며 읽었을 정도다.

 


 필자는 공감가는 구절이 있을 때, 연필로 줄을 치며 읽는 버릇이 있다. 이를 다시 필사까지 해 본다. 보통 책은 필사를 하면 2-3페이지 정도 나온다. 과거의 필사노트를 펼쳐보니 처음 접했을 때의 이 책도 2페이지 필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두 번 읽었을 때의 필사는 달랐다. 5페이지 정도 나왔다. 어떤 챕터를 읽을 때는 그 챕터의 모든 구절을 밑줄 긋고 싶다는 욕망까지 솟구쳤을 정도였다.

 


 그간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많이 읽어왔지만 역시 그는 사랑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빛이 나는 작가였다. Dr. LOVE. 그의 다음 사랑 이야기를 고대하며 이 글을 마치겠다.



ps.  예전의 글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