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2016. 9. 6. 20:01

단편 시나리오 쓰기

 

- 린다 카우길

 

 

 시나리오는 필자와 애증의 관계였다. 아니, 애증의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한창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일할 때, 시나리오를 끼고 살았던 필자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업무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항상 깨졌다. 시나리오를 볼 줄 모른다고. 억울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다. 물어보면 왜 모르냐고 욕먹었다. 이러니 필자가 시나리오를 증오할 수밖에. 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필자 옆에 늘 함께했으니까. 그렇게 시나리오와 정을 쌓아갈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시나리오를 안 써 본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청소년 영화제에 출품하고자 필자가 주축이 돼 시나리오를 집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덕분에 촬영에 들어가선 개고생 했었다. 최근 든 생각은 과거의 그것과는 달랐다. 조금 더 심도 있게, 조금 더 전문성 있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집어 들었다. 린다 카우길이 쓴 <단편 시나리오 쓰기>.

 


 시중에 널려있는 수많은 시나리오 관련 도서들 중 왜 이 책을 골랐을까? 단지, 이 책에서 주로 언급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단편 영화 <인생수업>을 봤기 때문이다. 익숙한 영화로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하니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적중했다.

 


 시나리오는 생각보다 단순한, 몇몇의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었다. 등장인물, 행동, 갈등, 변화. 이 키워드로 시나리오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영화는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해 간다. 영화는 하나의 대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와 관련된 요소들은 대부분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등장인물은 갈등을 겪으며 변화한다. 영화의 최종 목표는 등장인물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 지 설명하는 것이다.

 


 <인생수업>에선 라이어넬의 사랑, 예술의 목적에 대한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2013>에선 고등학생으로서의 김우빈, 이종석의 변화, 교사로서의 장나라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예쁜 남자>에선 장근석이 삶에 임하는 태도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변화라는 결과에 이르기 까지 많은 등장인물이 함께 했고 행동으로 자신들을 드러내며 그 행동들로 인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어렵고 난해하기만 했던 시나리오들이 몇 가지 원칙으로 정립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단편 시나리오 쓰기>. 즉 단편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하지만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책의 내용이 단편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편 영화에도 적용되고, 드라마에도 적용되는 범용적 원칙들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가치 있는 책이었다.

 


 다시 한 번 책의 제목을 살펴보자. <단편 시나리오 쓰기>. 정말 이 책 한 권을 읽고 단편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까? 필자의 대답은 ‘불가능 하다’다.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발전시키는 속성만 제시했을 뿐 시나리오를 다루는 기술적 원리를 제시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는 방법을 알려줬고,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했고, 뼈대를 구성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이 책과 더불어 직접적인 시나리오 집필 스킬을 익힌다면 분명 좋은 시나리오 한 편이 나올 것이다. 풍부한 예시들과 함께 시나리오의 키워드를 정립해준 책, 린다 카우길의 <단편 시나리오 쓰기>였다.

 

 


PS. 마틴 스콜세지의 <인생수업>을 본 후 이 책을 보길 추천한다. 작가가 시나리오의 모든 원리를 이 영화에 입각해 설명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