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2017. 11. 13. 18:43

단어의 무게

 

 어쩌다 글을 파는 게 직업이 되어버렸다. 내 글에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는 사실 지금의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글을 본 편집장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읽기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쓰네.” 이는 노린 측면도 있다. 일부러 가벼운 단어를 고르고 글에 스토리를 집어넣는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읽을 것 같아서. 종종 과유불급이 발생해 인터넷 커뮤니티에나 쓸 법한 글을 쓴다는 것도 단점이긴 하지만. 어쨌든 앞서 말했듯이 나는 최대한 단어의 무게를 비우고, 오롯이 글의 재미와 본질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 일상에서 쓰이는 단어의 무게는 내 글 보다 한참이나 무거운 단어들이 많다. 무거움에 맞게 올바르게 쓰이면 모를까 별 일도 아닌 곳에 쓰이는 지나치게 무거운 단어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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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팩트 (Fact)


 언젠가부터 많이 쓰인 용어. ‘팩트를 직역하면 사실이다. 사실이란 단어를 놔두고 왜 굳이 팩트라는 단어를 쓰는 것일까.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외국어를 쓰면 좀 더 있어 보이는 모종의 심리로부터 기인하는 듯 하다. 팩트의 무게감은 신방과를 전공 중인 나에게 너무나도 거대하게 다가온다. 사실과 진실을 추구해야하는 저널리즘. 저널리즘 속 팩트는 그야말로 진리에 가깝다. 필자 또한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요즘 오용되고 남용되는 팩트라는 단어의 쓰임을 보면 이러한 무게감이 깎이는 인상을 받는다. 좋다. 사건의 사실을 추구한다는 자세는 언제나 올바르기에. 하지만 그 단어의 무게감을 인식한 뒤 쓰이면 하는 바람이다.

 

2. 폭력

 

 ‘폭력 :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 쉽게 말하면 남에게 직접적 피해를 가하는 행위다. 그것도 거칠고 사납게. 그러나 요즘은 ‘~~이라는 관형 표현을 삽입하여 ~~적 폭력 이라는 단어를 자주 목격한다. 내가 피해를 받으면 이를 표현하기 위해 텍스트화 할 수 있으며, 텍스트화 할 때의 단어 선택은 각자의 자유다. 하지만 폭력이란 단어의 무게감을 생각지 않는 사례들이 너무나도 많다. 물론 유머러스하게 사용되는 팩트폭력() 등의 표현은 보기 좋다. 그러나 ~~적 폭력이라는 단어로 남들의 행위를 정의해 자신의 피해정도를 텍스트로 극대화하면 도리어 공감할 수 없는 의견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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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텍스트를 생산한다. 하지만 누구나가 문제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글을 생산한다는 것은 글에 대한 책임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행위이기도 한데, 이 책임감이 결여되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불편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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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최근에 쓴 칼럼 초안 발췌. 칭찬도 먹고, 욕도 먹은 칼럼. 칼럼도 내 생각의 일부고 피드백도 독자들 생각의 일부니 뭐... ㅠㅠ 하지만 단어의 무게를 왜 네가 정의하냐는 모 독자의 댓글은 아직도 이해가 안 갑니다.. 비공이 많이 붙긴 했지만 정말 팩트, 폭력 등의 무게가 가볍다고 생각하는 것 인가요...? ㅠㅠ

Posted by AC_CliFe
Book2016. 8. 30. 19:1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소설가) 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책의 장르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어떤 이는 성에 관한 이야기라 평했다. 다른 이는 정치, 사회적 장르라 했다. 또 다른 이는 철학서, 신학 서라고 했다. 이러한 장르 논쟁을 보고 광고인 박웅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무한한 우주가 담겨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수많은 장르를 품고 있는 책 이란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책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장르는 ‘연애소설’이라 단언하고 싶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선 극을 이끌어가는 두 개의 러브라인이 있다. 토마스-테레사의 러브라인, 사비나-프란츠의 러브라인이다.

 


 밀란 쿤데라는 사랑의 탄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은 메타포가 하나만 있어도 생겨날 수 있다.”

 


 토마스는 프라하의 풍족한 의사였다. 풍족한 사랑꾼이기도 했다. 그것도 가볍고 육체적인. 의사라는 직업에, 부유한 배경, 얼핏 보면 무거운, 영혼의 세계에 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사랑이 있어서 육체적 관계만 추구하고, 그러다보니 자신은 점점 가벼워졌다. 테레사는 시골의 부족한 웨이트리스였다. 그녀는 시골, 부족함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배경이 싫었다. 그녀 주위에는 경박한 엄마와 천박한 시골사람 뿐 이었다. 가볍고 육체적이었다. 그녀는 하루 발이 이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거움과 영혼의 세계를 꿈꿨기 때문이다. 그 때 자신의 이상처럼 보이는 토마스가 테레사에게 연락처를 건네줬다. 토마스가 시골에 출장 왕진을 갔다가 식당에서 테레사를 만났고, 늘 그렇듯 육체적 사랑을 꿈꾸며 연락처를 건넨 것 이다. 프라하로 오면 연락하라는 말 또한 덧붙였다. 테레사는 이런 토마스의 행동에 의미부여를 했다. 그 연락처를 영혼의 세계로의 초대로 인식 한 것이다. 테레사는 ‘안나 카레리나’ 한 권과 자기 몸만 한 트렁크를 가지고 토마스의 집으로 찾아갔다. 토마스는 테레사를 동정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갈 곳 없는, 자기 몸만 한 트렁크를 지닌 그녀. 그는 연민을 느꼈다. 이 ‘연민’이라는 메타포가 ‘사랑’ 이라는 감정으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이를 계기로 둘은 사랑하기 시작했다.

 


 사비나는 무거운 배경의 소유자다. 그 당시 소련 침공으로 인해 공산주의 化 된 체코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어딜 가나 반체제 인사 취급을 받는다. 더구나 화가라는 직업도 그녀를 오해하게 하는 데 한 몫 거들었다. 하지만 개별적인 테레사는 달랐다. 그녀는 모든 체제를 부정 혹은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둘러싼 무거움과 달리, 토마스처럼 성 관계를 맺고 쿨하게 헤어질 수 있는 가볍고 육체적인 사람이었다. 즉 무거운 배경을 증오하고 가벼움과 육체적 세계를 추구한 사비나였다. 프란츠는 이 사비나를 ‘경외’라는 메타포를 바탕으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스위스 ‘엄친아’ 프란츠는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아왔다. 유명한 수학자로서 20대의 나이에 교수가 되는 등 굴곡이 없는 삶 이었다. 고난이 없던 삶이어서 그런지 사랑에 있어서도 영혼의 사랑, 무거운 사랑을 원했다. 그랬던 탓 일까? 변화, 혁명, 투쟁에 갈증을 느꼈다. 그 때 사비나아 그 앞에 나타났다. 자신이 꿈꾸던 삶을 산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존경심, 나아가 경외심을 갖는다. ‘경외’라는 메타포가 이들의 사랑을 탄생시켰다.

 


 시작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두 커플의 끝은 판이했다. 다시 토마스-테레사 이야기를 해보겠다. 토마스는 가벼운 사람이었다. 영혼의 세계가 아닌 육체의 세계의 주민이었던 것 이다. 테레사를 만나는 중에도 다른 여자들과 만나고 성관계를 맺었다. 오죽하면 그의 머리에서 다른 여자의 음부 냄새가 났을까? 토마스가 영혼의 세계 사람이라는 테레사의 판단이 틀렸던 것 이다. 이로 인해 둘 사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토마스는 테레사를 잊지 못했다. 다툼으로 인해 떨어져 있던 상황에도, 항상 그녀를 생각했다. 이 생각은 점점 깊어져갔다. 결국 그녀를 만나기 위해 토마스는 자기 자신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의사에서 시골 정비사로,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육체의 세계에서 영혼의 세계로 ‘이동’했다. 이러한 토마스의 ‘이동’으로, 혹은 그의 ‘희생’으로 둘의 사랑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다.

 


 사비나와 프란츠에게도 가치관의 차이가 발생했다. 사비나 또한 토마스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육체적인 사람이었다. 사비나의 가벼움은 ‘배반’이란 단어로 상징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키치를 혐오한 그녀는 키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국, 가족, 사랑을 배반한다. 모든 걸 가볍게 여기는 그녀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결과다. 이런 사비나에게 프란츠는 자신의 무거움을 내세우며 다가왔다. 그의 부인 아리클로드와 이혼까지 하며 사비나에게 청혼을 했다. 그러나 사비나는 자신을 무거움으로 이동시키고 싶지 않았다. 자기희생을 원하지 않았다. 토마스ㅡ와 달리 선택의 기로에서 가벼움을 택했고 육체적 세계를 택했다. 사랑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이동’이 아닌 ‘유지’를 택한 것 이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이 사랑은 비극적 결말은 맺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 두 사랑 속에서 역사와 정치, 신학과 철학, 성과 사랑을 다룬다. 책의 시점 또한 주인공들 중 한명에서부터 전지적 시점까지 다룬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주제가 등장하는, 까면 깔수록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양파 같은 책이다. 그래서 어렵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단 한 가지만 기억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토마스처럼 ‘이동’과 ‘희생’을 하며 사랑할 것인가, 사비나처럼 ‘유지’를 하면서 사랑할 것 인가? 참고로 필자는 사랑이 이끄는 대로 행동할 것 같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