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Culture Life2018. 4. 17. 23:11

프로 대학불편러인 제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운 좋게 한 번에 합격했네요..


관심작가로 등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https://brunch.co.kr/@r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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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C_CliFe
Non Culture Life2017. 9. 15. 21:07

인맥

 

 

학창시절엔

그저 눈치 보며 살기 바빴다.

운동부 시절,

눈칫밥을 먹는 게 생명이었기에 그랬나보다.

 

운동을 그만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인기 많은 애들이 부러웠다.

 

이런 생각은

당시 프로그램 CP의 말을 들은 후 달라졌다.

 

인맥은 만드는 게 아니라 따라오는거야.”

 

너가 성공하면 인맥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는 뉘앙스였다.

 

정말이었다.

대학 입학 후,

어쩔 수 없이 내 대학을 밝혀야 할 자리가 있었다.

 

대학에 대한 내 인식은

지난 글에도 말했으므로

나는 밝히기 싫었다.

 

그러나 말한 후 내 인맥은 금새 달라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연락도 안 오던 애들이 갑자기 연락하고

심지어 알지도 못한 고등학교 동창 여자애들은

나에게 페친을 걸었다.

 

물론 다 씹었다.

고등학교 땐 친하게 지내다가

재수할 땐 자기네들 대학생활 한다고 내 연락 무시한 애들이

이제 와서 연락을?

역겨웠다.

 

그 후 내 인맥을 리셋했다.

나에게 따라오는 인맥은 두 분류였다.

나에게 엿을 먹인 인맥과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인맥들.

 

인맥 리셋은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내 곁에 항상 함께 할 x랄 친구들이 있고,

일하며 만난 멋진 형과 누나들.

 

그리고 나 자체에도 긍정적이었다.

심층적인 인간관계를 추구하며

조금 더 편안해졌다.

 

굳이 가면을 여러 겹 쓸 필요도 없었다.

물론 최소한의 가면은 쓰고 다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덧붙여 인맥을 가리는 능력까지 얻었다.

 

사실 인맥이란 단어가 그리 마음에 들진 않는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인맥이란 단어로 규정되어

계산적은 느낌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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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C_CliFe
Non Culture Life2017. 8. 29. 20:42

대학

 

1.

스무 살, 재수할 때 까지는 대학이 전부인 줄 알았다. 대학 잘 가아지 인생이 핀다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명제를 진리로 강요받으며 자라왔으니까. 그러나 이 명제는 스물 한 살, 대학 1년을 다닌 후 처참히 부셔졌다.

 

2.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학교 이름이 고등이 아닌 ’. 그럼 강의도 진짜 이름에 맞는 강의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학문적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 뭐 이런 정도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러나 2주 정도 지나보니 알게 됐다. 내 동경은 그저 막연한 것 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혹여나 우리 학교만 이런 게 아닐까 했다. 당시 여친의 학교 가서 몰래 청강을 해봤다. 역시나였다. 대학이란 가두리를 벗어나 방송국 조연출을 하면서, 인턴기자를 하면서 배운 게 훨~~씬 많았다.

 

3.

혹자들은 반문한다. 네가 수업을 안 듣고 부정적으로만 편향적 사고를 하니 그리 된 거 아니냐. 맞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수업을 안 들은 건 아니다. 1학년 때 과탑도 먹어봤다. 여태까지 학기 중 성적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다. 편향적으로 사고하는 것도 아니다. 3학년을 바라보는 지금의 귀납적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해야 하나.

 

4.

그들은 또 반문한다. 대학이 싫으면 자퇴하면 되지 않느냐. 왜 돈을 그렇게 낭비 하냐. 1학년 때 내 가방 한 편에는 자퇴서가 함께했다. 장학금을 받아 감면돼서 나오는 등록금 몇 십만원 내기가 싫어 이 마저도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왜 지금도 투덜거리며 다니고 있냐고? 대학 타이틀 마저 없으면 나는 이 사회에서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5.

방송국 조연출을 할 수 있었던 이유, PD들이 나를 좋아했던 이유, 인턴 기자를 할 수 있었던 이유, 서평을 쓰며 지낼 수 있었던 이유, 그 밖의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내가 갖는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 다 내 대학 타이틀 때문이었다. 심지어 드라마 PD 마저 대부분이 4년제 대졸 이상이 기본 자격 조건이다.

 

6.

그렇다. 어제 개강을 했다. 오늘까지 학교를 다녔다. 빨리 방학했으면 좋겠다. 아 이번학기는 계절학기 까지 들어야 하는구나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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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C_CliFe
Book2016. 9. 28. 12:54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309동 1201호

 

 

 보통 휴가와 마찬가지로 휴가 첫 날, 알라딘 중고서점을 들렸다. 볼 만한 책 뭐 없을까 하다가 눈에 띠는 제목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 한 때 SNS에서 구독하던 페이지였다. 하지만 SNS를 찾는 발걸음이 줄어들면서 그에 관한 소식도 더 이상 접하지 못하게 됐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시간강사 생활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필자는 지방시를 구입해 오랜만에 그를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한 지방시.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반가웠던 마음은 불편한 마음으로 변해갔다. 근래 읽었던 책 중 가장 읽기 거북했던 책이었다. 시간강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대학의 사회구조와 시간강사의 길을 택한 저자의 가치관이 문제였다.

 

 

 상아탑이라 불리며 학문의 정점을 유지했던 대학.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학은 그 성격을 잃었다. 아니, 자발적으로 버렸다. 대학은 자본에 종속된 하나의 기업으로 변모했다. 기업의 성격은 대학 곳곳에 퍼졌다. 대학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원은 학문의 정진을 위해 힘쓰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에게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철저한 노예의 인생을 강제했다.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야…….’ 관습이란 이름 아래 그들은 노예생활을 강요받았다. 저자 역시 이러한 관습의 피해자였다. 노예생활을 버티고 나서도 대학은 그에게 온정을 베풀지 않았다. 고학력 알바 개념인 시간강사 삶은 그에게 4대보험 가입도, 생계 보장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저자는 4대보험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맥도날드 알바를 병행했다.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저자의 삶, 그리고 본질을 놓아버린 대학의 사회구조 였다.

 

 

 필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인 비단 대학의 사회구조뿐만이 아니었다. 시간강사의 삶을 택한 저자의 가치관 또한 필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저자의 가치관은 시간강사라는 삶과 어울리지 않았다. 인문학을 향한 이상을 갖고 있던, 상아탑이라 불리던 대학에 호응할 듯 한 그의 가치관은 신자유주의 논리를 마주친, 취업사관학교로 변질된 대학에 맞는 조각이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가치관의 필자와 대비되는 저자의 가치관은 불편함을 넘어 안타깝다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지방시를 발표하고 저자는 내부고발자로 찍혀 시간강사의 생활을 접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는 저자가 지방시를 집필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예견했을 거라 생각한다. 다소 비극적인 결과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지방시와 이 글을 관통하고 있는 불편함에 대해서. 지방시 저자가 불편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은 필자가 아닌 궁극적으로 대학이라는 사회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내부고발을 통해 대학을 불편하게 만듦으로써 후배들에게 좀 더 편한 대학원 생활을 만들어주고픈 선배의 바람. 자신의 희생을 통해 대학이란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멋진 행동가, 309동 1201호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였다.

 

 

 ps. 담담하게 고백하는 듯 한 그의 문체는 감정적인 호소 면에서 높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단순히 내부고발에 그쳤다는 점에선 아쉬웠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등을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