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2017. 1. 9. 14:38

무(巫)

 

- 닷텍스트

 

 

 一 하늘과 二 땅 工 그것을 이어주는 巫 인간 무당.

 

 

 다른 종교에는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는 필자. 그러나 무당은 예외였다. 한자 풀이 그대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인간인 무당. 즉 하늘과 땅의 매개자이자 그들의 뜻을 인간에게 전파하는 전달자인 무당. 멋스럽고 신비로운 존재였다. 이 관심은 무당 자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발전해 무당 인터뷰집인 <무(巫)>를 읽게 만들었다.

 

 

 무당은 보통의 존재다. 결국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란 말이다. 일 할 때는 일하고 놀고 싶을 때는 놀고 술 마시고 싶을 땐 술 마시고. 대부분이 이를 몰랐다는 게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무당이 ‘신’을 모신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예외적 인물로 규정했다. 무당에게 이상한 무리라는 편견을 부여했다. 그래서일까. 그냥 보통 사람으로 봐달라는 무당들의 외침이 간절하고 아련하게 느껴졌다.

 

 

 무당은 행복 구원자다. 이 책을 읽기 전(前) 생활관(내무실) 인원들에게 물었다. 무당하면 떠오르는 것은? 별의 별 말이 다 나왔다. 무섭고 두려운 사람들이다. 정신 나간 것 같다. 심지어는 악마를 모시는 사람들 아니냐는 말까지. 내가 알고 있던 무당에 관한 지식이 잘못된 것일까 의심할 정도였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깨달았다. 역시 내 말이 맞았구나. 아니, 틀렸다. 무당들은 생각 이상으로 사람들의 행복에 신경 쓰고 있었다. 그들이 <무(巫)>에서 가장 많이 한 말. ‘그저 사람들을 위해 빌어주는게 우리의 일이다.’ 신에게 비는 행위를 통해 찾아온 사람들의 행복을 구원해주는 일.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글귀 하나가 있다. 무당 연화의 할아버지 신이 한 말.

 

 

 “1등 무당은 행복한 무당이다. 너(연화)가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게 밝혀줄 수 있는가.”

 

 

 무당은 희생자다. 개별적인 무당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희생자라 생각한다. 우선 위 문단에서 언급한 타인의 시선. 중복되는 내용이니 말을 줄이겠다. 그리고 무당이란 운명 그 자체. 인간은 추억을 머고 꿈을 위해 사는 존재란 말이 있다. 무당에겐 이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 추억을 먹을 순 있지만 꿈을 위해 살 순 없다. 신내림이란 과정을 통해 무당의 삶이 강제되었으므로. 무당의 삶을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했으므로.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구속당한 느낌이랄까. 안타깝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 나온 무당들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으나 지금은 만족한다니.. 다행이다.

 

 

 무당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했던 이 책. 이 책은 호기심을 충족시켜준 것은 물론 무당에 관한 진실까지 알려줬다. 온갖 괴소문으로 가득한, 그래서 부과된 선입견의 무당이 아닌 보통의 존재이자 행복 구원자였던 무당.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상 닷텍스트의 <무(巫)>였다.

 

 

ps. 이런 바람이 통한 것일까. 독립서점에서 <무(巫)>의 재입고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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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2016. 12. 27. 20:25

발칙한 예술가들

 

 

- 윌 곰퍼츠

 

 

 대부분은 말한다. 노력은 재능을 이긴다. 23년이란 시간을 살아오면서 느낀 바로는.. 이 말은 구라다! 재능은 노력으로 이길 수가 없다. 야구를 할 때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다. 항상 필자 위에 있던 선배. 지금은 모 구단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재수를 할 때, 마찬가지였다. 공부 량으론 최고였던 필자. 허나 반 1등은 늘 반장이었다. 항상 뒤에서 몰래 핸드폰만 했던 녀석인데. 예술가도 재능이 우선시 될 거라 생각했다. 창조성이 중심인 예술이란 분야. 창조성은 노력으로 얻기 힘든 특성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예술가는 재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 생각에 반례를 제시한 책이 출판됐다. 윌 곰퍼츠의 <발칙한 예술가들> 이다.

 

 

 윌 곰퍼츠는 창조성에 대해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 그는 궁금했다. 창조성은 과연 천부적인 것일까. 이 물음에 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그는 직접 행동했다. 창조성을 업으로 삼는 예술가들을 찾아가 인터뷰했다. 과거 예술의 발전을 이끈 예술가들을 연구했다. 갖은 노력 끝에 답을 내릴 수 있었다. 그 답을 열한가지 섹션으로 풀어놓은 책이 오늘 서평할 책 <발칙한 예술가들>이다.

 

 

 실패하는 예술가. 피트 몬드리안, 데이비드 오길비. 예술에 무지한 필자도 들어본 이름들이다. 즉 성공한 예술가들이다. 필자의 지난 정의에 따르면 이들은 창조성이란 재능을 타고나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실패를 거듭했다. 몬드리안은 자신만의 색을 찾지 못해 고심에 고심을 했으나 돌아오는 건 평단의 싸늘한 반응뿐이었다. 오길비 또한 20년 간 직업을 바꾸며 불안정한 삶을 구가했다. 둘은 실패라는 쓰라린 경험을 맛봤다. 그렇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몬드리안과 오길비는 실패라는 맞지 않은 길속에서 플랜 B를 발견해 성공이란 반전을 이뤄낸 노력의 예술가들이었다.

 


 훔치는 예술가. 입체파의 거장, 누구나 아는 예술가 피카소다. 피카소는 아방가르드의 고장, 파리에 오기 전부터 영재소리를 들은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 정도의 재능 가지고는 좋은 예술가는 될지 언정 위대한 예술가는 될 수 없었다. 그는 한계를 자각하고 다시 붓펜을 잡았다. 그는 그렸다. 고유의 스타일을 위해 그리고 또 그렸다. 과거 영광을 누렸던 예술가들의 화법을 훔쳐가며 창조성에 다가갔다.

 

 

 멈추어 생각하는 예술가. 예술가가 작업실 의자에 앉으면 비평가로 바뀐다. 이 문장을 누구보다 잘 실현한 예술가는 마르셀 뒤샹이다. 천부적 창조성은 뒤샹에게 부족했다. 그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노력을 더했다. 멈추어 생각하는 노력. 뒤샹은 행동하는 것 보다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림을 그린 후 작업실 구석에 위치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앉아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도중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보면 과감히 붓질했다. 이러한 노력을 거쳐 그는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겠다.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서론에서 제시한 필자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노력도 재능만큼이나 창조성에 있어서,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구나. 노력의 힘을 간과하면 안 되는 구나.

 


 가만, 누군가 그러길 공부할 때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것도 재능의 일종이라던데……. 저자가 제시한 위 특성도 결국 재능의 일종이 아닐까? 윌 곰퍼츠의 <발칙한 예술가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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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2016. 12. 21. 14:29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

 

- 정은영

 

 

 돈이 좋았다.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필자는 돈에게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일방적 사랑을 퍼붓는 수준에 이르렀다. 돈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알바 2개는 기본이었다. 장학금을 따기 위해 밤새면서 공부했다. 글을 팔았고 토토에도 손을 댔었다. 왜 필자는 돈에 집착하는 피폐한 생활을 이어왔을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불우했던 지난 인생, 여친과의 재력 차이에서 오는 열등감, 가정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 이런 생각을 곱씹어가면서 돈을 향한 필자의 애정은 더욱 커져갔다. 동시에 그저 방송국에 입사해 월급쟁이로 살아가기만을 바랐던 꿈도 조금씩 원대해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창업을 생각하게 됐다.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게 만드는 단어 창업. 하지만 창업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던 필자. 늘 그랬던 것처럼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창업이란 세계에 전입하기로 했다. 그 첫 발걸음은 오늘 소개할 책 남해의 봄날 정은영 대표의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다.

 


 

 다수의 창업 관련 책 중 왜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를 선택했을까. 단순하다.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 크리에이티브. 사실 필자의 가치관과 다소 거리가 있는 속성이다.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가치관을 지닌 필자이기에. 허나 창업을 한다면 필자가 자신있어하고 열망하는 분야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크리에이티브를 핵심으로 하는 사업, 브랜드 스토리텔링 컴퍼니였다.

 

 


 브랜드 스토리텔링 컴퍼니. 낯선 영단어로 도배되어있어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쉽게 말하면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미디어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며 글 쓰는 일이다. ‘다양한’이란 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브랜드 스토리텔링 컴퍼니는 무궁무진한 분야를 포함한다. 출판 업체서부터 영화포스터 제작, 잡지촬영, 관공서 디자인까지.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는 본인만의 크리에이티브를 주 무기로 하여 사랑이란 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13인의 크리에이터 인터뷰를 담았다.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한 오늘날, 누구나 글 쓰고 기획하고 소통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됐다. 그렇기에 브랜드 스토리텔링 컴퍼니에 진입하기 위한 장벽은 낮은 편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장임을 의미한다. 스몰컴퍼니라는 구조적 한계 또한 뚜렷하다.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타 업계와는 달리 스몰컴퍼니는 소프트웨어 중심이다. 이로 인해 매출의 흐름이 시시각각 요동친다. 즉 회사 존폐위기가 쉽게, 자주 찾아온다는 것이다. 클라이언트 비즈니스란 점에서 고객 관리도 신경 써야 하고 자유분방함을 지향하는 크리에이터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직원 관리도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 돈이 안 된다! 인터뷰이 13인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대표라는 직함을 달았지만 오히려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일반 직원들보다 더 적을 때가 많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필자는 돈을 사랑한다. 스몰컴퍼니의 최대 단점은 돈이다. 당장 창업하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심도 있는 고민을 해봤다. 가치관과 반대되는 창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그때 알 수 없는 끌림이 솟구쳤다. 그래도 필자가 자신 있어 하는 분야이기에, 필자가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피어났기에, 필자만의 색을 이 스몰컴퍼니에서 세련되게 뽑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에.

 


 

상출판사 천성연 대표가 말했다.

 

“웬만하면 하지마라 ··· 막연하게 생각하면 백발백중 깨진다.”


 맞다. 책 한 권만 보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금이 필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스몰컴퍼 니라면 깨지더라도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이 알려준 지침대로 행한다면 언젠가 빛을 볼 것 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생겼다. 돈을 위해 창업을 하려 책을 펼쳤으나 돈과 동떨어진, 작은 회사에 관한 환상만 심어준 미묘한 책, 남해의 봄날 정은영 대표의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였다.

 


 

ps.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는 스몰컴퍼니 창업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주는 상세한 지침서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에게도 좋지만 창업을 앞둔 사람에게 더 적절한 책이다. 필자는 전자의 사람이기에 전자의 초점에 맞춰 글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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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2016. 12. 17. 19:20

피디란 무엇인가

 

- 이정석 외 41명 공저

 

 

 이 책과 필자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PD의 꿈을 위해 신방과에 진학해 학교를 다니고 있던 필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중 전화 한 통이 왔다. 한때 필자와 같은 PD지망생이었으나 기약 없는 언시생 생활에 지쳐 모 출판사에 취직한 누나였다. 이번에 PD 관련 책을 출판했는데 교열 및 서평을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주말에 만나 원고를 받았다.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 순간 식겁했다. 그래도 밥 한 끼, 술 한 잔, 책 한권 공짜로 얻는 셈이니 그녀의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그 때는 출판일이 많이 남지 않아 속독을 한 후 교열과 서평을 마무리 했다. 책을 음미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렇지만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자기개발을 위한 시간은 저 멀리 사라졌다.

 

 

 이 책을 다시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 건 지난 휴가 때였다. 오랜만에 방을 청소하던 필자. 낯선 원고 한 덩이를 발견했다. 먼지가 자욱하게 쌓여있던 원고. 먼지를 털어보니 쓰여 있는 글씨 <피디란 무엇인가>. 지난 기억이 떠오르면서 책장을 넘기고픈 열망도 함께 떠올랐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요즘의 군 생활이므로 주저 않고 책을 가방에 넣어 자대로 향했다.


 

 <피디란 무엇인가>. 심심하고 원론적인 제목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압도적인 책 두께. 처음 보는 이들은 도전할 엄두가 안 날수 있다. 필자 또한 그랬으니까. 하지만 생각 외로 몰입감있게, 공감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이 배경에는 42명의 PD들이 있었다.

 


 이제 갓 입사해 조연출을 맡고 있는 새내기 PD들부터 연차가 쌓여 퇴직을 바라보고 있는 국장급 PD까지. PD하면 생각나는 예능·드라마 PD서부터 아직은 생소한 분야인 전문언어 PD·코디네이션 PD까지. 다양한 연령대·직종의 종사하는 PD들의 글은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분량을 조율하는 구성도 책에 유려함을 더했다.

 

 

 1부 <PD시험 준비, 스펙보다 스토리다>는 방송국 입사의 방법론을 공유한 장이었다. PD지망생이 관심을 갖고 볼 섹션.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킨 1부의 이야기였다. 자기소개서, 상식, 논술·작문, 면접 등의 여러 관문으로 이루어진 언론고시. 각 단계마다 맞춤 공략법을 제시해 실용적인 특징을 보였다. 필자 같은 경우 자신의 글빨을 마음껏 뽐내야 하는 ‘작문’에 약점이 있었다. 이 파트를 유심히 보던 중 ‘멍때리며 사람구경’하라는 조언이 있었다. 의아했다. 멍때리기가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걸까. 그 PD는 일상의 평범한 풍경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작문에 도움이 된다고 서술했다. 꽤나 신박한 방법! 다음부터 활용해보기로 마음먹었다.

 


 2부 <세상을 향한 PD의 시선>은 앞서 말한 다양한 직종의 PD에 대한 소개글이었다. 방송국 계약직으로 일하며 터득한 내용이 대부분. 긴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할 것. 조연출 시절. 누구에게나 조연출 시절은 인생의 암흑기였다. 기억해선 안 될 과거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3부 <PD, 세상을 편집하라>는 2부의 심화격인 섹션이었다. 필자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준 섹션이기도 했다. 드라마 조연출 시절, 그 작품의 메인 PD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드라마는 지극히 대중들을 위한 장르다. 대중의 눈높이에 모든 것을 맞춰라. 여기서도 유사한 말이 나왔다. 드라마의 예술성은 대중성이다. 사실 필자에게 대중성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명작이라 여기는 드라마 또한 <그들이 사는 세상>,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과 같은 마니아층 드라마였다. 요즘 유행하는 <도깨비>도 유치하다고 생각해 절대 안 본다. 이런 필자가 무슨 드라마 PD를 한단 말인가! 그래도 어쩌겠는가. 꿈을 포기할 순 없는데. 대중의 시선을 분석하고 또 분석할 수밖에.

 


 4부 <PD를 향한 도전기>. PD라는 직업에 어떻게 반했는지, 왜 도전했는지 보여주는 장. 1부랑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 이만 말을 줄이겠다.

 

 

 지난 날 이 책을 접했을 땐 지식 충전의 느낌으로 읽었다. 더불어 들이닥친 마감에 대한 압박감. 교열을 위해 글자 하나하나를 꼼꼼히 봤으나 체화시키지는 못했다. 오늘날은 확실히 달랐다. 본격적으로 언시길에 발을 들여놓았기에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책과 동행했다. 조연출 경험도 있어선지 저자들과 공명하며 읽기도 했다. 역시 책은 두 번 이상 읽어야 하나보다.

 

 

지금까지 피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상세히 알려준, PD란 꿈에 도전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 이정식 외 41명 공저의 <피디란 무엇인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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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2016. 12. 8. 19:03

뭐라도 될 줄 알았지

 

- 이재익·이승훈·김훈종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들의 술자리 화두는 달라졌다. 수능이 끝났을 땐 대학 얘기 뿐 이었다. 대학을 진학했을 땐 군대고민만 했다. 군대가 끝나갈 무렵인 지금, 이제는 취업, 즉 먹고사는 문제였다. 평균이하로만 구성된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대학 ·군대 문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끼리 무의미한 토론만 계속했다. 답이 없는 얘기만 반복됐다. 결국 이렇게 된 우리의 신세를 한탄하고 이 지경까지 만든 사회를 원망했다. 그 때 의경에 복무 중인 한 녀석이 말했다. “또라이들아, 우리끼리 탁상공론 한다고 문제가 해결 되냐. 간단히 생각해. 뭐라도 돼 있겠지.” 맞다. 결국 시간은 흐르므로. 대학도 어떻게 해결됐고 군대도 어찌어찌 갔으니 취업도 뭐.. 돼 있겠지! 한껏 취기가 오른 우리는 저만한 솔루션이 없다며 또 다시 건배를 외쳤다.

 

 

 지금 추억하면 정말 병신 같다. 왜 저런 근거 없는 낙관론에 환호를 했는지. 특이한 건 뭐라도 되겠지 는 우리만 생각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도 자신들이 뭐라도 될 줄 알았나보다. 오죽하면 책 제목이 <뭐라도 될 줄 알았지>일까. 인정하긴 싫지만 저 말에 감복한 적이 있어서, 한때 가치관으로 삼았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책에 흥미가 갔다. 이 흥미는 책 구입으로 직결됐다.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정의하면 불혹의 나이를 넘은 세 명의 PD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공유한 책이다. 정의만 보면 아재들이 싱싱한 젊은이들에게 훈계질 하는 책으로 비춰질 만하다. 그러나 이들은 서두에서 밝힌다. 훈계질 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책 디자인도 그렇고 팟캐스트에서 떠드는 이들의 성향도 그렇게 훈계질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를 염두하고 아재들이 진행하는 수업 속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시간. 소설가이자 라디오 PD 이재익 선생의 수업이었다.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을 듣고 있으면 필자와 가장 흡사하다고 느낀 사람이 이 이재익이다. 시니컬한 감성에 항상 견지하고 있는 비판적 시선, 그러면서 은근히 순응적인 역설적 매력. 이재익의 가치관은 이 책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개소리다’부터 삶의 지침이나 원칙은 없어도 된다고 얘기하는 것 까지. 도덕이나 윤리 따윈 개나 줘버린 그의 태도가 잘 묻어있다.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모든 줄을 다 지키면서 사는 삶은 답답하다.’ 필자 또한 야매 인생을 지향하며 살아왔기에 이 말에 큰 공감을 표했다. 덧붙여 자신이 얼마나 어긋나 있는 지에 대한 반성도 하라 조언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니. 동의하는 바였다.

 

 

 두 번째 시간. 웹툰작가와 라디오 PD를 겸직하는 이승훈 성생. 이승훈은 세 수업 중 가장 실용적이었다. 눈에 띤 건 경제시간. 돈이 있어야 힘이 난다는 그의 지론처럼 온통 돈 이야기뿐이었다. 그 중 경제원칙과 지불요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가 제시한 그만의 지침들은 쉽게 돈을 벌어 그릇된 낭비를 반복하던 필자에게 꽤나 도움이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아플 적이 거의 없었다는 말고 공감됐다. 군대에서 아프면 가장 서럽다는 말이 있다. 다행히 필자는 운동을 해서 그런지 서러웠던 적은 없다. 그 밖에도 세상에서 사랑받으려면 노력해야 된다는 코멘트도 흥미로웠다.

 

 

 세 번째 시간. 예능PD에서 라디오PD로 전직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김훈종 선생이었다. 책 출판 과정에서 어머니의 투병생활을 지켜본 그인 만큼 이번 수업에선 생(生)과 사(死)에 관한 담론이 가득했다. 중학생 때, 국어선생님이 문제를 냈다. 삶은 ○○로 가는 기차다. ○○는 무엇일까? 반 친구들이 여러 답을 외쳤으나 돌아오는 건 틀렸다는 대답 뿐. 맨 뒷자리에서 퍼질러 자던 필자가 말했다. 죽음이요. 우리의 시작은 삶, 끝은 죽음이란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대답. 뭔 개소리냐며 애들이 핀잔을 줬다. 그때 국어선생님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답. 필자 또한 당황했다. 충격도 받았다. 그래서인가.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문장이다. 김훈종의 글을 보니 그 또한 이 말에 동의하는 듯 했다. 모든 걸 해체해야, 모든 걸 버려야, 모든 걸 내려놓아야 비로소 보인다고 말하는 그. 우리네 인생은 결국 덧없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전부라 말하는 그. 가볍고도 무거운 존재론적 고찰에 관한 수업이었다.

 

 

 책을 다 읽었다. 결론이 났다. 이 책은 훈계질의 책이다. 하지만 기존의 그것과 달랐다. 뭣도 없는 꼰대들이 아닌 무언가를 가르칠 자격을 지닌 선생들의 훈계였으므로. 덕분에 유쾌하고 긍정적인 수업을 즐길 수 있었다. 뭐라도 되겠지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뭐라도 된 사람들이 선사하는 인생수업, 이재익·이승훈·김훈종의 <뭐라도 될 줄 알았지>였다.



ps. 씨네타운 나인틴을 생각해 조금은 거침없이 써봤습니다..

Posted by AC_CliFe
Book2016. 12. 6. 19:36

걱정마, 안 죽어

 

- 김명훈

 

 

필자가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이유.

 

첫째. 같은 말, 다른 단어 -- 동어반복의 연속.

둘째. 동어반복의 악순환에서 탄생하는 자기 모순적 주장

셋째. 자기계발서를 쓰는 작가들에 대한 불신.

 

안타깝게도 <걱정마, 안 죽어> 또한 위 말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계발서였다.

그렇지만 이 책은 기존의 그것들과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타(他)자기계발서는 대부분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걱정마, 안 죽어>는 지극히 자신만을 위했다. 필자의 가치관에 적합한 작품이었다.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임에도 읽기 거북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인상적인 글귀를 필사하며 읽었을까.

 

긴말 안하겠다. 필사한 문장을 적으며 김명훈 작가의 <걱정마, 안 죽어> 서평을 마치겠다.

 

 

- 유언장을 적어두라.

- 인생은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 어떤 인생이 부러운 인생인지 글로 써봐라.

- 행복을 추구하지 마라. 당신이 추구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라.

- 뭔가를 사고 나서 돈을 갚고 나면 돈을 모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 모든 혁명은 나로부터의 혁명이다.

- 자신교를 믿으라.

- 최단시간 내에 최대한 빨리 끝내버려라.

- 죽을 때 죽더라도 힘차게 살아보자.

Posted by AC_CliFe
Book2016. 11. 26. 20:39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소설가) 저



 

 이 책의 제목처럼 오늘날은 ‘뉴스의 시대’다. 사회에 뉴스의 양 자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뉴스 자체의 질에 대해서도 관심이 증폭됐다. 이 뉴스는 어떤 성향을 띠고 있는지, 어떤 논조로 기사를 작성하는지, 어 떤 소식을 주로 다루는 지 등에 대한 관심이다. 이는 곧 대중들의 뉴스에 대한 맹목적 수용이 아닌 선별적 수용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도 뉴스에 대한 선별적 수용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한 자신만의 지침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뉴스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라, 추측으로 점철된 기자의 관점을 조심해라 등 기존의 관련 책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지침들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책을 조금 더 정독하며 살펴보니 알랭 드 보통은 뉴스가 갖춰야 할 성격 ‘한 가지’에 유독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한 가지는 뉴스가 다루는 주제에 대한 ‘맥락’이었다.


 

 정치뉴스 中 사건이 전개되어 온 더 넓은 맥락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은 것.


 해외뉴스 中 우리가 특정지역에서 일상적으로 통하는 게 뭔지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한다면 비일상적 상태를 측정하거나 그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이다.


 경제뉴스 中 비즈니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오로지 경제 용어로만 작성하거나, 회사 전 체를 +1.20 이라고 요약하거나 하는 행위들은 한계가 명확한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맥락’에 대한 지적은 일견 공감이 됐다. 오늘날의 뉴스 구조를 살펴보면, 사건의 결과에 많은 비중이 쏠려있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나 원인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거나 극소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뉴스의 불친절은 뉴스의 수용자, 대중들이 사건에 대한 본질을 알지 못하게 하고, 사건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맥락’. 뉴스를 소비 및 수용하는 대중들의 입장에선 중요한 게 맞다. 그들 또한 뉴스의 본질, 그리고 깊은 이해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스에 맥락을 담아낸다는 관점은 안타깝게도 비현실적이다. 왜냐하면 뉴스라는 매체도 결국 ‘돈’이라는 상업적 요인과 결부되어있기 때문이다.

 


 뉴스를 제작하는 여러 기업들은 다수의 고객들을 유치하길 원한다. 그로인한 다량의 광고가 많이 붙기를 원한다. 그들도 이윤추구를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고객, 다량의 광고를 위해선 어찌해야겠는가? 자신들이 제작하는 뉴스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는, 소비자들의 지갑을 이끌어 낼 뉴스를 제작해야 한다.

이런 뉴스는 알랭 드 보통이 생각하는 맥락화된 뉴스가 아닌, 결과만 간단하게 압축한 뉴스다. 실제로 어떤 사건의 결과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뉴스가 사건의 배경, 원인까지 설명한, 즉 맥락화된 뉴스보다 더 높은 트래픽을 기록하고 더 많은 가입자를 이끌었다. 이런 사실을 안 기업들은 너도나도, 당연하게도, ‘결과’만을 위한 뉴스를 제작,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실적인 누스의 선별적 수용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두 종류의 뉴스 읽기를 추천한다. 뉴스는 각 회사의 특성에 따라 다른 논조를 띠기 마련이다. 상반되는 논조를 지닌 두 뉴스를 선택해 그 사이에 존립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는 것 이다. 맥락화된 뉴스가 불가능한 오늘날에, 두 종류의 뉴스 읽기는 대중들의 정보 선별적 수용을 위한 차선책으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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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2016. 11. 13. 18:21

신동진 기자의 글쓰기 3GO

 

- 신동진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에 글쓰기 책을 수 십 권 읽어봤다. 글쓰기에 통달한 사람들의 집단, 언론계 종사자들에게도 물었다. 하지만 공통으로 수렴되는 답변은 저 말 뿐이었다. 그저 많이 쓰고 많이 읽다보면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다는 추상적인 조언과 함께. 아쉬웠다. 필자 기대를 충족시키는 답변은 아니었다. 결국 위 말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을 전환해보기로 했다. 그래. 글쓰기에는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글쓰기의 지름길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 즈음에 만난 책이 오늘 서평 할 책 <신동진 기자의 글쓰기 3GO>였다.

 

 

 이 책에 대한 첫 인상.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별로였다. 책 제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신동진 기자의 글쓰기 3GO? 글쓰기 책에 맞지 않는 평범하고 밋밋한 제목이었다. 표지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본인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제목과 표지에서 그만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신동진이라는 이름을 책 제목에 차용하고 대중적인 책에 자신의 사진을 게재한다……. 모든 걸 걸고 만들었다는 신동진 기자의 각오를 느꼈다.

 

 

 책을 읽어보니 신동진 기자의 자신감은 근자감이 아니었다. 기존 글쓰기 책들이 답습한 ‘추상성’이란 아쉬움에서 탈피해 ‘구체성’의 책을 집필했다. 그 중심에는 그가 글쓰기 훈련을 하면서 터득한 공식, 글쓰기 방법론이 있었다.

 

 

 글쓰기에 특별한 공식이나 구조가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다만 굳이 찾아서 적용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필자의 직관을 믿었다. 필자의 감각을 신뢰했다. 대충의 개요를 짠 후, 펜 끝에 모든 걸 맡기는 무모한 글쓰기를 선호했다. 그러다보니 컨디션에 따라 글의 수준의 좌우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글의 기복은 점점 더 심해졌다. 독자들의 피드백은 양극단을 달렸다. 신동진 기자의 방법론은 이런 단점을 보완해줄 신선한 처방전이었다.

 

 

 설득하는 글을 쓰기 위한 글쓰기의 기본 주근사 (주장+근거+사례) 부터 보고 듣고 느낀 글의 공식 현장사배 (현장묘사+사건개요+배경분석), 용어를 설명하는 글 용배설사 (용어설명+배경설명+사례), 마지막으로 요약을 위한 글쓰기 틀 우~자유 (우선순위+자유쓰기) 까지. 신동진 기자는 다양한 글 성격에 대비한 맞춤 방법론을 정의하여 우리를 글쓰기의 지름길로 인도했다.

 

 

 <신동진 기자의 글쓰기 3GO>는 방법론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글쓰기 방법론이 적용된 기사의 예시를 풍부하게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들었다. 또한 기자들만의 글 쓰는 훈련이나 보편적이지만 익히면 익힐수록 좋은 글쓰기 기본 요령도 알려줌으로써 책에 무게감을 더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신동진 기자의 글쓰기 방법론은 필자의 글쓰기 스타일과 상반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틀에 갇힌 글쓰기로 필자만의 개성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책을 다 읽고 이 방법론을 적용한 기사 몇 편 써보니 오히려 필자만의 새로운 무기가 생긴 느낌이었다. 나아가 스타일의 융합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방법론으로 글쓰기 달인을 향한 지름길을 제시한 글쓰기의 바이블, 신동진 기자의 <신동진 기자의 글쓰기 3G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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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2016. 11. 8. 19:27

헌법의 풍경

 


김두식(대학교수) 저 



 법. 우리에게 ‘법’이라는 단어는 가깝고도 먼 단어다. 이 특성은 법 중의 법인 헌법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우리는 헌법에 명시된 ‘인권’이라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를 외치며, 이를 사수하기 위해 수 없이 많은 투쟁을 해왔다. 하지만 헌법 그 자체에 대해선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온갖 추상적인 단어로 도배해 우리를 낯설게 하고,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헌법의 효력을 은닉하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만 ‘가깝고도 먼’이라 했지 사실상 헌법은 우리에게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 우리와 먼 정도가 아니라 잃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잃어버린 헌법을 되찾기 위해,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헌법’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주는 책이 바로 이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이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되어있지만 크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다.

 


 첫 파트는 우리나라의 법조계 얘기다.

 


 필자는 우리나라 법조계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주변에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도 없고, 미래에 법조인에 대한 뜻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법조계 하면 영화나 책에서 묘사된 정의로움, 강인함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몇 년 전, 이모가 변호사가 되고, 대학에 입학해 법 관련 수업을 청강하며 법에 대해 조금 더 가까워지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법조계에 대한 호기심도 같이 생겼다. 이모한테 물었다. 완전 추상적이고 막연한 질문. “법조계 어때?” 돌아온 답변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모는 폐쇄적이고 비논리적의 극단을 달리는 집단이라 답했다. 법치주의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는 개방성을 지녀야 할 의무가 있는 법조계가, 법이라는 규정 아래 치열한 언변과 논리싸움을 일삼는, 그래서 ‘논리’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법조계가, 오히려 그 반대의 성향을 띠고 있다니. 며칠 후 이모는 필자에게 이 책을 주며, 법조계의 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라고 권했다.

 

<헌법의 풍경>을 통해 접한 법조계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신분제도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철저히 학연, 지연, 혈연으로 돌아가고 단단한 엘리트 의식으로 무장한 그들이었다. 자신들만의 언어를 구사해 일반 시민들과의 괴리감을 키우고, 자신들의 영역에 대한 접근 자체를 아예 차단하면서 특권을 가진 집단인 마냥 행동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집단이었다. 이러한 집단이 되기까지는 법조계 그 내부의 문제도 있었지만 외부 요소도 그 못지않게 영향을 미쳤다. 고시생이라는 미생에서 법조인이라는 완생으로 거듭난 그들을 떠받드는 주변의 반응. 법조인에게 무한한 권력을 쥐어준 국가라는 괴문도 한몫했다. 좋다. 아무리 법조인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특권 의식을 뽐낸다 하더라고 그 힘을 올바르게, 정당하게, 제대로 사용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법조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를 지켜주는 헌법, 그리고 기본권이 점점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 내용을 담은 단원이 두 번째 단원, ‘무너지고 있는 우리의 기본권’ 에 대한 단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법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로, 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청강ㅇ을 하고, 법 관련 서적을 보는 등 꽤나 열심히 했었다. 그래서인지 법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갖춰있을 것이라 자평했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고 본 필자가 지닌 지식은 실효성 없는 허상인 것을 알게 됐다. 원론적, 고전적 지식만 접하고, 법조인들의 입장만 대변한 지식이었다. 특히 우리가 묵비권이라 알고 있는 진술 거부권, 그리고 임의 수사에 대한 지식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법조계의 권위와 편의를 위해 우리들의 위대한 방패인 진술 거부권을 허물어버리는 그들의 위선.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우리들을 우롱하기 위해, 피해자 마음대로 법원에 가거나 떠날 수 있는 임의수사이지만 멋대로 강제인척 ‘소환’한다고 하는 그들의 수사방법.

 


 우리는 그들의 편의를 위한, 그들의 권력을 위한, 그들의 존재 자체를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법조계의 처사는 당연하게도 우리들의 인권침해로 귀결되었고, 기본권 침해, 나아가 헌법의 침해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대한 진실을 알았을 때, 법조계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필자가 너무나 한심스러워졌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작가는 대화와 타협, 연대와 동감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당연한 것을 수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이러니하고도 원통할 따름이다. 그래도 이제라도 이러한 우리나라의 단면을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또한 훗날 필자가 이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숙고해 볼거리를 던져준 고마운 책이었다. 당연히 지켜져야 할 헌법을 우리의 손이 아닌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법조인들의 손에 맡겨질 당연한 사회를 고대하며 글을 마치겠다. 이상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 이었다. 

Posted by AC_CliFe
Book2016. 11. 3. 19:52

사회학 : 비판적 사회 읽기

 

 

- 비판사회학회

 

 

 

1.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단 하나의 학문을 꼽으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뽑을껀가요?’

 

 사회학 수업의 교수가 OT때 한 질문이었다. 뭐 이런 답정너 같은 질문이 있는가. 그 교수는 예상대로 ‘사회학’이라 답했다. 사회학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학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루한 강의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필자와 사회학의 만남이 시작됐다.

 

 

2.

 그 강의는 A+를 받았다. 하지만 기분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A+라는 평점에 비해 얻어가는 것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교수는 자신의 PPT를 가지고 활자 그대로를 읽는데 그쳤다. 대학교에서 배우는 사회학이지만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사회문화라는 과목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학문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강의를 신청했건만 갈증이 증폭되는 결과만 낳았다. 결국 사회학에 대한 미련만 남은 채 군대에 들어갔다.

 

 

3.

 사회학에 대한 미련은 군대에서도 지속됐다. 분명 가치 있는 학문이라 이대로 포기하긴 아쉬웠다. 그 교수를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군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답장이 왔다. 개론서 한 권을 읽으란다. <사회학 : 비판적 사회 읽기>. 진짜 지루할 것 같았다. 교수의 PPT처럼 지루한 설명들만 즐비할 줄 알았다. 그 교수가 추천해줬고, 제목도 그런 뉘앙스를 풍겼으니까. 그리고 8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도. 자기 같은 것만 추천해준다고 투덜댔다. 하지만 이미 구입해버린 책. 뭔가 다르겠지, 아니 달라야만 해. 이상한 주문을 중얼거리며 책을 ‘공부’해 가기 시작했다.

 

 

4.

 <사회학 : 비판적 사회 읽기>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배경지식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공부하기 수월했다. 여러 사례와 다이어그램을 활용한 책의 구성도 좋았다. 무엇보다 책의 가치관과 필자의 가치관이 일치해서 재미있는 공부가 될 수 있었다. 현상이 발생하면 의심부터 하자는 비판적 가치관이었다. 책의 부제 ‘비판적 사회 읽기’ 다웠다.

 

 

5.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단지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사회현상을 비판적, 진보적 시각에 입각해 바라보면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제시했다. 이 효과는 각 단원 마지막에 ‘한국’ 사회를 개별적으로 다루면서 비판점 및 보완책을 제시한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6.

 개론서답지 않는 개론서라는 점도 좋았다. 개론서라는 것 자체가 공부를 위한 책이기 때문에 딱딱하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개론서는 ‘대중서’를 지향하면서 사회학적 사고, 사회학적 상상력을 전파하는데 효과적인 책이 되었다.

 

 

7.

 이 책을 다 공부하니 문득 그 교수의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단 하나의 학문을 꼽으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뽑을껀가요?’

 

필자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사회학이죠!’

 

사회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 나아가 과학, 환경까지 다루는 보편적인 학문, 사회학에 대한 개론서, 비판사회학회의 <사회학 : 비판적 사회 읽기> 였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