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08.28 특별하고도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Movie2016. 8. 28. 15:03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누도 잇신


 

 필자는 일본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일본영화들은 대부분이 너무나 단순하고 뻔뻔한 플롯들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중후반까지는 필자의 냉소적인 이 편견을 벗어나지 못했다.

 

 

 러닝타임 한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대략 20분 간격으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 화면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분명 영화자체는 매력적이었다. 장애인과의 사랑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조금은 유쾌하게 조금은 진지하게 조화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또한 영화 곳곳에 나오는 대사들. 그리고 복선들. 이누도 잇신의 치밀한 연출이 돋보였다. 하지만 이게 다였다. 그저 담백해 보이는 척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재개봉 할 정도의 가치는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마지막 10분이 이 모든 편견을 다 부셔버렸다. 동거하던 조제와의 담담하고, 덤덤한 이별.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만나는 전 여자친구.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터져버리는 울음. 이 장면들이 있기 전, 자신들도 자연스럽게 이별을 준비하는 모습들 까지.

 


 필자는 영화를 보고 나서, 집까지 지하철이면 10분이면 갈 거리를 굳이 버스를 타 30분 넘게 가는 버릇이 있다. 그 시간 동안 바둑을 끝낸 갓세돌 마냥 영화를 복기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복기 전, 즉 영화를 보는 중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주제를 단지 표면적인 ‘장애인과의 특별한 사랑’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 모든 것이 집약되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마지막 10분을 곰곰이 되새겨봤다. 그리고 결론이 났다. 흔하디흔한 ‘사랑의 변화’가 주제였다. 장애인과 정상인의 사랑이 아닌, 그저 인간과 인간의 사랑을 다룬 ‘담백한’ 영화였다.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변화한다.' 츠네오와 조제 또한 서로 사랑을 하며 변화했다. 필자는 이 변화 더욱 극적으로 드러나는 조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랑을 하기 전, 조제는 자신을 숨기기 일쑤였다. 유모차에 자신을 은폐엄폐하고, 집 안에서도 조그만 옷장에 자신을 숨겼다. 하지만 츠네오와 만나고 사랑을 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호랑이와의 만남'이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남자가 안 생기면 호랑이는 평생 못봐도 상관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

 

 

 좋아하는 남자, 즉 사랑을 통해 장애라는 허물을 벗고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조제의 변화는 호랑이를 통해 빚어지는 외면의 변화 뿐 만이 아니다. 츠네오와의 사랑이 한창 무르익을 시간 1년. 1년 후의 여행에서, 물고기가 함께하는 여관방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내면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사랑을 하기 전, 조제는 해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답답하고 고독한 공간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츠네오와의 1년이라는 사랑의 시간을 거치며 그녀는 내면에서 질곡의 변화를 느꼈다.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고, 혹여나 사랑을 찾게 된다면 다시 한 번 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정점은 역시 마지막 10분! 조제는 1년 전과는 다르게 아무렇지 않게 전동 휠체어로 세상을 누비며, 정리한 집에서 일상을 맞이하고, 또 다시 의자에서 다이빙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를 보면서 느낀 점. 감독의 역량이 이렇게 두드러진 영화가 또 있을까? 그리고 ‘장애’라는 다소 자극적인 수단으로 ‘사랑’이라는 담백한 목적을 이루는 이토록 역설적인 영화가 또 있을까? 재개봉 할 가치가 있는, 가슴 한 켠을 뭉클하게 만드는, 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었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