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2016. 11. 6. 18:24

목도할 수밖에 없었던 성폭력

 

 


0.

 성폭력이 난리다. 각계각층을 가리지 않고 요동치고 있다. 요즘 성폭력의 특징은 권력관계다. 갑을 프레임 속에서 자행되는, 권력에 기댄 성폭력 이전보다 더욱 이슈화 되는 실정이다. 군 입대 전, 아이러니하게도 성폭력이 활개 치던 곳에서만 일해 왔던 필자. 허나 나이와 짬에서 밀려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필자. 군대라는 폐쇄적 환경과 익명성이 보장되는 블로그라는 공간에 기대 목도할 수밖에 없었던 성폭력을 기록해보려 한다.

 

 


1.

 야구를 그만두고 스포츠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필자. 간접적으로라도 스포츠를 즐겨보려고 모 스포츠마케팅 대행사에 들어가 야구, 농구 각각 한 시즌 씩 일한 적이 있다. 필자의 업무는 이벤트 관리. 구체적으로는 치어리더 관리였다. 치어리더는 밝은 미소와 우아한 춤 솜씨로 관객들의 응원에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경기장의 꽃이라 불릴 만 한 그녀들. 하지만 이 꽃을 탐하려는 벌레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같이 사진을 찍자며 그녀들의 주요 부위를 더듬는 행위는 기본. 심지어 탈의실 창가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기까지 했다. 점점 도가 지나치는 행동을 하자 필자도 그만 두라며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돌아오는 건 모욕적인 쌍욕 뿐. 비용을 지불하고 돌아왔단 이유만으로 관객 본인들을 갑이라 여기고 저지른 저질 행위들. 기억하기 싫은 과거였다.

 

 


2.

 흔히 기자. 특히 공중파 기자는 갑의 위치에 군림한다고 생각한다. 취재를 통해 얻은 정보를 보도하고 대중에게 인지시키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기에. 그러나 이는 남성 기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여성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철저히 을이 되고 만다. 


 지난 세월호 사건 때 필자는 보도국으로 파견을 갔다. 보도국 특성 상 기자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많았다. 언젠가 비교적 연차가 낮은 기자들과 술자리에 동행했었다. 언론인 지망생인 필자. 그들에게 물었다. 기자의 고충이 뭐냐고. 예상했던 것 보다 힘들다. 체력적으로 너무 고되다.. 등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한 여기자가 말했다. 여자라서 힘들다고. 무슨 소리냐고 의문을 표했다. 성(性)에 관한 얘기였다. 그 여기자는 사회부 기자였다. 사회부는 야간 취재, 술자리 취재가 많은 부서였다. 더구나 취재원들은 주로 386세대라 일컬어지는 40·50대 남성들이었다. 이들은 취재에 적극적으로 임해주는 대가로 성을 요구했다. 농담을 빙자한 노골적인 섹드립은 물론 옆에 앉아서 술을 따르라 명령하고 나가서 섹시한 춤을 춰보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했다. 더 서러웠던 것은 얼른 하라고 부추기는 선배 남기자들의 압박. 취재 과정에서는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이 갑, 정보를 제공받는 기자가 을이었다. 취재원들은 정보를 권력으로 간주해 여기자들에게 성을 강요한 것이다. 아직도 시대를 역행하는 갑을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니. 무섭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3.

이리저리 팔려 다니긴 했지만 필자의 본 소속은 예능국이었다. 음악방송을 전담한 조연출. 정말 재미있었다. 페이도 괜찮았고 업무 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도 다수 만났다. 무엇보다 필자가 원하는 일을 했기에 즐기면서 업무에 임했다. 하지만 방송계에 빛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빛은 그림자를 동반한다. 방송계의 그림자는 역겨움으로 표상되는 성폭력이었다.

 

 연예인이 되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다. 허나 방송계 사람들은 수많은 방법을 단 두 가지로 압축한다. 피나는 노력하기 아니면 자신의 성을 수단화하기. 전자는 순전히 본인만의 노력으로 연예인이 되는 방법이다. 연예인이 되기 위한 정도(正道). 대부분이 이 정도를 걸어 연예인이 됐다. 후자는 본인의 성을 데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는 연예인이 되기 위한 지름길로 불린다. 이 길을 택한 연예인 지망생은 성을 바쳐야만 그토록 갈망하던 연예인이 될 수 있다. 비단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다. 남성도 그들의 성을 상납해야 했다. 또한 이 길엔 여러 권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연예기획사부터 브로커, 국내 유수의 대기업까지....... 꿈꾸는 이들을 을로 만들어 왜곡된 성욕을 채우려는 갑들. 지독한 갑을관계가 정상(正常)처럼 여겨지는 방송계. 과연 필자가 역겨움이 판치는 이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진지한 고민을 안겨준 4년간의 조연출 생활이었다.

 


 

4.

 완전한 글은 문제 제기서부터 대안까지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 글을 불완전하게 끝낼 수밖에 없었다. 장고를 거듭했으나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권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라. 성에 대한 윤리의식을 제고하라. 성 관련 제도를 강화하라. 다른 글들이 제시한 대안들은 너무나 추상적이었다. 그저 바랄 뿐이다. 권력이 득세하는 갑을프레임의 사회구조가 붕괴되어 성폭력 피해자들이 고통 받지 않는 사회가 도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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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C_CliFe
Book2016. 9. 28. 12:54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309동 1201호

 

 

 보통 휴가와 마찬가지로 휴가 첫 날, 알라딘 중고서점을 들렸다. 볼 만한 책 뭐 없을까 하다가 눈에 띠는 제목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 한 때 SNS에서 구독하던 페이지였다. 하지만 SNS를 찾는 발걸음이 줄어들면서 그에 관한 소식도 더 이상 접하지 못하게 됐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시간강사 생활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필자는 지방시를 구입해 오랜만에 그를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한 지방시.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반가웠던 마음은 불편한 마음으로 변해갔다. 근래 읽었던 책 중 가장 읽기 거북했던 책이었다. 시간강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대학의 사회구조와 시간강사의 길을 택한 저자의 가치관이 문제였다.

 

 

 상아탑이라 불리며 학문의 정점을 유지했던 대학.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학은 그 성격을 잃었다. 아니, 자발적으로 버렸다. 대학은 자본에 종속된 하나의 기업으로 변모했다. 기업의 성격은 대학 곳곳에 퍼졌다. 대학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원은 학문의 정진을 위해 힘쓰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에게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철저한 노예의 인생을 강제했다.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야…….’ 관습이란 이름 아래 그들은 노예생활을 강요받았다. 저자 역시 이러한 관습의 피해자였다. 노예생활을 버티고 나서도 대학은 그에게 온정을 베풀지 않았다. 고학력 알바 개념인 시간강사 삶은 그에게 4대보험 가입도, 생계 보장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저자는 4대보험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맥도날드 알바를 병행했다.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저자의 삶, 그리고 본질을 놓아버린 대학의 사회구조 였다.

 

 

 필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인 비단 대학의 사회구조뿐만이 아니었다. 시간강사의 삶을 택한 저자의 가치관 또한 필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저자의 가치관은 시간강사라는 삶과 어울리지 않았다. 인문학을 향한 이상을 갖고 있던, 상아탑이라 불리던 대학에 호응할 듯 한 그의 가치관은 신자유주의 논리를 마주친, 취업사관학교로 변질된 대학에 맞는 조각이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가치관의 필자와 대비되는 저자의 가치관은 불편함을 넘어 안타깝다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지방시를 발표하고 저자는 내부고발자로 찍혀 시간강사의 생활을 접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는 저자가 지방시를 집필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예견했을 거라 생각한다. 다소 비극적인 결과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지방시와 이 글을 관통하고 있는 불편함에 대해서. 지방시 저자가 불편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은 필자가 아닌 궁극적으로 대학이라는 사회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내부고발을 통해 대학을 불편하게 만듦으로써 후배들에게 좀 더 편한 대학원 생활을 만들어주고픈 선배의 바람. 자신의 희생을 통해 대학이란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멋진 행동가, 309동 1201호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였다.

 

 

 ps. 담담하게 고백하는 듯 한 그의 문체는 감정적인 호소 면에서 높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단순히 내부고발에 그쳤다는 점에선 아쉬웠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등을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