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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9.03 예술과 욕망, 그리고 낭만 - <달과 6펜스>
Book2016. 9. 3. 11:27

달과 6펜스

 

 

 ‘일상’은 우리네 삶을 유지시켜주는 하나의 장치다.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만인의 투쟁을 바로잡아주고, 정상의 지침을 마련해 준 것이 지금의 일상이다. 일상은 우리에게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일상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무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술 혼에 인생을 맡긴, 예술, 아름다움이라는 주관적 욕망에 사로잡힌 예술가들이었다.

 


 美(미)에 취해 오로지 예술을 추구하며, 예술 혼을 불태우며 살았던 예술가들. 예술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들은 일상이라는 질서에서 벗어나 탐미적 광기 속에서 살아야 했던 것 일까. 이러한 의문이 한창 달아오를 때 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두 분류로 정의할 수 있다. 달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 6펜스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

 


 영롱하게 빛나는 달은 우리의 육체 뿐 아니라 영혼까지 비춘다. 영혼을 매혹하면서 우리의 주관적 욕망을 자극한다. 이 자극에 반응하여 자신만의 열정과 광기를 극적으로 발산하는 사람들이 달의 세계 사람들이다.

 


 6펜스도 빛난다. 조금은 거친 빛을 내는 6펜스는 우리의 육체만을 비춘다. 육체를 비추면서 우리를 이끈다. 세속적인, 그리고 타성에 젖은 일상으로. 세속의 애환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6펜스 세계의 사람들이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달의 세계 사람이다. 아니. 6펜스 세계에서 달의 세계로 온 이주민이다. 런던의 증권 브로커로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그. 단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유로 모든 일상을 버리고 낯선 타지, 파리로 떠난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추구하는 예술가로서, 그리고 달의 세계로의 첫 발걸음이었다. 그 후 탐미적 광기에 빠져든 채, 영혼과 본능의 세계에 빠져든 채 오로지 예술, 그림만을 위한 삶을 영위한다.

 


 문득 서두에서 밝힌 필자의 의문이 다시 생각났다. 무엇이 스트릭랜드를 예술가들의 生(생), 그리고 달의 세계로 초대한 것일까? 스트릭랜드의 궁극적 목표, 열반 혹은 진리,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다. 일상이 지배하는 6펜스 세계에는 속물적 근성이 만연해 있었다. 사람들을 나태와 권태로 찌들게 하는 안락이 팽배해 있었다. 사람은 결국 세속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고, 일상에 처절하게 매몰됐다. 세속적 화가 스트로브, 속물근성의 스트릭랜드 부인, 히스테리적 여자 블란치 등이 6펜스 세계를 대변한다. 스트릭랜드는 일상에 찌든 6펜스 세계 주민들에게 경멸과 냉소를 남긴 채 달의 세계로의 초대를 수락했다.


 

 그렇다면 과연 스트릭랜드는 달의 세계에서 자신의 갈망을 누릴 수 있었을까? 스트릭랜드는 그림이라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이상향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타히티에서 스트릭랜드의 예술적 열망을 극에 다다랐다. 문둥병이라는 육체적 고난도 그의 갈망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의 갈망, 그리고 열반, 진리, 자유는 타히티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의 갈망은 타히티 본가에 그린 그림, 원시적 낙원의 세계로 형상화 됐다. 그리고 난 후, 달의 세계에서의 그의 여정을 마감했다.

 


 <달과 6펜스>를 완독하니 스트릭랜드와 필자가 미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었다. 필자 또한 스트릭랜드처럼 6펜스 세계를 혐오하는 부류였다. 6펜스 세계에 만연해있는 특유의 세속적 분위기에 거부감이 들었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해체시키는 문명에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필자를 염세주의로 인도했다. 하지만 스트릭랜드와 필자에겐 결정적 차이가 존재했다. ‘달의 세계’로의 이주다. 스트릭랜드는 과감했다. 필자는 두려웠다. 두려움으로 인해 일상과의 타협을 마주했다. 그리고 일상에 매몰됐다. 이 미세한 차이가 스트릭랜드를 위인으로 만들었고 필자를 범인으로 만들었다.

 


 혹자들은 <달과 6펜스>를 광적인 예술가들에 대한 옹호만 할 뿐 다른 주제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무가치한 작품이라 혹평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속에 살아가던 독자들에게 낭만적 환상을 보여줌으로써 자유에 대한 갈망을 꿈틀거리게 한 것만으로도 <달과 6펜스>의 가치는 충분했다. 인간 근원의 욕망을 건드리는 위험하고도 낭만적인 작품,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였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