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2018. 3. 24. 18:24

절절함 속에 스며든 아련한 연애 - <연심(戀心)>

 

 

 

- 고은채

 

 

 

 책을 접할 때, 오롯이 작품만을 위해 배경지식은 모조리 차단해버린다. 그러나 <연심>을 보기 전과 보는 중, 너무나 많은 정보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얻게 됐다.

 

 

 우선 작가의 나이를 알게 됐다. 작가는 필자보다도 4살이나 어리다. 고은채 작가가 <연심>의 첫 문장을 쓰게 된 때는 고등학생 때였다. 물론 <연심>은 작가의 첫 작품이었다. 이런 정보를 알게 되니 글을 읽을 때 필연적으로 편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면 이는 오판 이었다. 작가의 경력과 나이에 상관없이 그의 깊은 통찰과 심연에서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반추하게끔 만들 정도였다.

 

 두 번째는 제목 연심의 뜻. 연심은 사랑하여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스펙 하나 더 쌓아보겠다고 발버둥 칠 때 외웠던 한자다. 사랑하여 그리워하는 마음. 보통 배우자를 여의었을 때 쓰는 단어다. <연심>의 주인공 중 표면적으로 죽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연심이라 제목을 지었을까? 이면적으로 죽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은휘의 남편 재우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대항하는 신문사에서 일하며 독립을 열망하던 재우. 은휘에게 재우는 빛이었다. 그러나 이 빛은 일제에 의해 어둠으로 바뀐다. 재우가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재우는 어둠이 되었고 이면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은휘는 재우에게 변치 않는 사랑으로 감싸준다. 재우를 살려보기 위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하지만 돌아오는 건 거세되어 오는 자신이었다. 결과적으로 은휘 자신도 이전의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래서일까? 재우가 연심을 울부짖으며 떠나가는 모습에 뭉클함을 느꼈고, 재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은휘에게 애틋함을 느꼈다.

 

 세 번째는 이상의 <날개>. 고등학생 때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문학을 배웠고 이상을 만났다. 문학에는 답이 없다. 학창시절의 문학은 답을 강요했다. 그 속에서 이상의 작품은 유달리 빛이 났다.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의 작품을 흠모하게 되었고 대학교에 와서는 그의 작품을 분석한 문헌들을 읽으며 나름 이상 권위자가 되었다. 고은채 작가는 말했다. ‘박제가 된 천재의 이야기를 듣다가 불현 듯 <연심>을 쓰게 되었다고. 그래서인지 몇몇 시퀀스는 이상의 <날개> 모습이 보였다. 돈을 위해, 남편 재우를 위해 매음을 하는 아내, 아내의 별칭 연심, 아스피린과 아달린, 돋보기로 휴지를 태우는 남편 재우, 그리고 미쯔꼬시 백화점. 작가가 밝혔긴 했다지만 오마주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퀀스가 이상의 느낌이 배어 있었다. 더구나 이 시퀀스들이 극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 시퀀스라 느꼈기에 아쉬움은 배가 됐다.

 

 네 번째는 프랑스의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연심>의 얼개는 <여자의 일생>과 유사했다. <연심>의 분위기는 톨스토이의 클리셰 중 하나인 성스러운 창녀의 느낌이 묻어났다. <연심>은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작가의 생각을 스토리텔링으로 꾸며내야 하는 장르다. 아쉽지만 <연심>에서 작가의 생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표절로 비쳐질 수 있는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 이는 작가의 개성과 생각을 선명하고 섬세하게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그렇기에 <연심>에 숨겨진, 전달하고픈 작가 본연의 모습과 메시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작가의 필력은 어마어마했다. 특유의 묘사는 물론이고 인물의 심경변화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은 대단했다. 덕분에 절절함 속에 스며든 아련한 연애를 활자로써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기대가 된다. 훗날 고은채 작가가 어떤 소설로 자신의 능력을 발산할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할지.

 

 

<본 리뷰는 도서출판 답의 서평단으로서 참여한 리뷰입니다.>

Posted by AC_CliFe
Topclass2018. 3. 23. 22:58

<진심을 말해버렸다> 정다이 작가 인터뷰 입니다!


기사 읽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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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C_CliFe
Column2018. 3. 12. 19:53

개인주의를 위한 자기고백

 

 대한민국 집단주의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기적에는 희생이 뒤따른다이 희생은 동일하게 집단주의였다집단주의는 우리 사회의 악으로 자리잡아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이런 기세에 반발하여 등장한 게 개인주의집단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은 조금씩급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개인주의의 유행을 이해하지 못했다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믿었고 그래서 누구나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했다그 위에 쌓아진 실현 욕구의 차이가 개인주의자를 가른다고 여겼다필자는 개인주의의 실현 욕구가 강했다집단에 매몰되기 싫었다그래서 대학이 좋았다내가 무엇을 하든 지 신경 안 썼기에그래서 아싸가 좋았다인간관계를 신경 쓸 시간에 일을 하고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개인주의자를 꿈꾸며 울부짖는 사람들에게 냉소를 넘어 조소를 보냈다그러다 문유석 부장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봤고 나를 돌이켜보는 기회를 얻었다.

 

(중략)

 

 결과론적으로 필자는 집단주의자였다아니우리 모두 집단주의자였다성악설에 근거한 본성은 대한민국 집단주의 환경에 거세되었다사실 개인주의자를 표방한 나는 그 누구보다 집단에 잘 적응했다어린 나이부터 해온 사회생활의 경험이 행동에서 묻어났다고 해야 할까집단과 집단 간의 선호도가 나를 개인주의자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중략)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그렇기에 관계를 빚어가며 살아간다하지만 관계는 집단이었다한 집단이 싫어서 개인주의를 선언하고 그 집단을 나온다그러면 다른 집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집단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이고 나였다.

 

(후략)

 

ps. 문유석 부장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접한 적이 있어서 칼럼의 글감으로 정했고 글을 썼습니다글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문유석 판사가 혐오하는 냉소의 느낌이 짙습니다결론도 냉소로 끝냈습니다아무리 생각해도 집단주의는 대물림 속에서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문유석 판사는 대화와 토론을 강조했지만 대화와 토론도 집단 속에서 이뤄지고 그 결과 집단주의로 귀속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네요이 글을 쓰면서 자괴감도 들었습니다이런 글 쓰는 놈이 언론계에 있고메이저 언론인을 지망한다는 거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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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