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2016. 8. 25. 18:49

불안

 

알랭 드 보통 (소설가) 저 



 요즘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품고 있는 감정은 ‘불안’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말 그대로 ‘자본’의 사회다. 자본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자본의 유무에 따라, 정도에 따라 사람들은 불안을 품게 된다. 아이러니한건 자본이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모두 불안 속에 산다는 것 이다. 자본이 많은 사람은 이 자본을 유지할 방법에 관하여, 없는 사람은 이것을 늘릴 방법에 대하여 고민하며 불안해한다.

 


 불안은 不(아니 불)자를 쓴다. 즉 부정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필자는 불안을 보통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여긴다. 불안이 지니는 ‘삶의 원동력’이라는 측면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필자의 생각과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은 어떻게 비견되는 지 알아보기 위해 이 책을 펼쳤다.


 

 알랭 드 보통은 ‘지위’의 정의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지위, 단순히 말하면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위를 나타내는 특정 기준은 변화했다. 하지만 높은 지위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변화하지 않았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불안이 시작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높은 지위 = 성공 이라는 명제는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공을 갈구한다. 성공 자체를 갈구하는 행동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 및 사회적 원인’ 이라는 요소가 개입됨과 동시에 불안의 씨앗이 발아한다.

 


 이제부터 개인 및 사회적 원인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사랑결핍’. 사랑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불안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 이다.개인적으로 사랑 결핍에 따른 불안은 가장 본능적이고 궁극적인 단계의 불안이라 생각한다. 무시를 두려워하고 사랑을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천성이다. 물질적 관점에 따른 불안도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론 사람들의 관심, 즉 사랑을 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결핍에 따른 불안을 가장 짧게 서술했다. 그러나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다.

 


 ‘속물근성’. 속물근성도 사랑결핍과 비슷한 맥락이다. 속물근성은 말 그대로 속물근성이다. 물질적으로, 풍부한 사람들을 좋게 보고 그들과 친해지려고 하는 근성, 그 반대의 사람들을 반대로 대하는 근성. 과거보다 현재가 이러한 속물근성이 더 심화됐다는 게 이 챕터의 요지다. 이 챕터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기대’. 우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진보를 이룬 오늘 날, 현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는 불안과 동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꽤나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불안은 자존감 하락에서도 올 수 있다. 자존감은 기대와 관련이 있다. 자존감 = 기대/한 일 이기 때문이다. 즉 기대를 낮추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고 불안을 낮출 수 있는 관계가 성립된다. 자존감-기대의 관계가발전해서 불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러한 알랭 드 보통의 관점은 굉장히 신선했다.

 

 

 ‘능력주의’. 능력주의도 기대, 속물근성과 비슷한 맥락이므로 한 문장을 인용하며 마무리 하겠다.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불확실성’. 현재에 사는 우리가 불안에 떠는 가장 보편적인 원인이 바로 이 불확실성이다. 이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므로 별다른 언급 없이 지나가겠다.

 


 다음은 해결책들 이다.


 

 ‘철학’. 철학자는 이성, 양심을 강조했다. 자신만의 기준을 정립하여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굴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인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줄 잣대를 세우라는 것 이다. 즉 ‘기준 적용’이 철학이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철학에서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파트는 ‘지적인 염세주의’다. 필자가 살면서 추구하는, 필자만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파트를 읽을 때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되었던 말 몇 개를 적어보겠다. ‘상포르’의 말,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그리고 지적인 염세주의의 약점, 과도하면 친구가 없어 질 것이다.


 

 ‘예술’. 예술은 예전부터 확실히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처방전 중 하나라 생각해왔다. 예술은 우리 현실의 삶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요소는 비극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비극은 말 그대로 비극적 내용을 다룬다. 우리가 불안으로 인해 맞을 수 있는 수많은 비극적인 결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안의 결과를 미리 접함에 따라, 불안이 안겨줄 수 있는 무서움에 대한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게 된다.


희극은 비극과 다른 방식으로 불안을 덜어준다. 바로 ‘풍자’다. 풍자를 통해 불안을 가중시키는 개인이나 사회에 통쾌한 ‘엿’을 먹인다. 이 엿을 통해 우리는 내제된 불안을 덜어내는 효과를 얻는다.



 ‘정치’. 정치는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이다. 지위에서 오는 불안을, 지위를 상승시키는 방법으로, 즉 불안의 핵심을 건드려 불안을 더는 해결책이다. 지위에서 오는 불안을, 지위를 상식시키는 방법으로, 즉 불안의 핵심을 건드려 불안을 더는 해결책이다. 이 파트는 광범위하므로.. 이 글에선 패스하겠다.

 


 '기독교'. 통칭해서 종교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비록 무교이자, 종교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는 필자지만 종교의 장점 중 하나는 줄곧 인정해 왔다. 바로 종교를 통해 죽음에 대한 불안을 덜 수 있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종교의 존재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알랭 드 보통 또한 이 같은 관점으로 종교, 특히 기독교에 관해 논한다. 또한 관련해 흥미로운 옛 사람들의 관점도 찾을 수 있었다. 어차피 죽을 것, 뭣 하러 잠시뿐인 지위에 목을 매고 불안을 촉진시키냐는 관점이었다. 과거 수많은 예술가도 이 관점에 동의하며 자신들의 작품에 이런 관점을 담았다. 이 관점은 분명 흥미롭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한번 뿐인 인생, 죽음에 상관 말고 자기 끌리는 대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보헤미아’. 처음 전문적으로 접한 보헤미안들은 멋있었고 화려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용어를 빌리자면, 영혼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 너무, 과하게 이를 추구해서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헤미아는 물질적 수단을 통한 지위보다는 정신적 성숙을 추구했다. 관련 지위에 새로운 정통성을 부여하고 위계를 설계했다.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대안 지위를 마련했다. 불안을 덜기 위해 삶의 방향까지 바꾸는, 대범하고도 매력적인 불안의 해결책 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개인감정에 치우친 서술을 주로 선보였다. 사랑 3부작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사회 감정에 치우친 서술을 선보였다. (‘불안’은 개인감정의 한 종류이지만,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감정이기 때문에 사회 감정이라 생각했다.) 사회 감정을 다루는 알랭 드 보통? 조금은 낯설기도 했다. 그러나 낯섦이 더해지니 더욱 인상적이었다. 왜 ‘불안’이 알랭 드 보통 대표작으로 손꼽히는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