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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01 사랑, 그 이후의 일상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Book2016. 10. 1. 18:59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알랭 드 보통

 

 

 ‘The Course of Love’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여친이 보낸 메시지의 전문이다. 사랑의 과정? 오랫동안 사귀어온 관계. 그렇기에 지극히 쿨한 관계. 이런 관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와 같은 답장을 보냈다. ‘뭔 x소리?’ 답장이 왔다. ‘The Course of Love' 똑같은 답장이었다. 대화가 진전될 기미가 안보였다. 읽씹했다. 몇 분 후, 여친한테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 알랭 드 보통이 새 책을 냈다고 한다. ‘The Course of Love'는 그 책의 제목이었다. 닥터 러브가 새 책을 냈다고? 그것도 소설? 온라인 서점으로 들어가 바로 결재버튼을 눌렀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을 통해 낭만적 연애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마음껏 뽐냈다. 필자는 알랭 드 보통 만의 깊은 통찰에 감탄하며 이 시리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 한편엔 아쉬운 점도 있었다. 보통의 ‘연애’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것. 필자가 하고 있는 장기간 연애나 결혼까지 발전한 특별한 ‘연애’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The Course of Love’에서 항상 사랑의 초중반에만 통찰한 알랭 드 보통 이었다.

 

 

 하지만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The Course of Love’ 중 사랑의 후반부에 집중한 소설이었다. 즉 그 후의 일상에 관심을 둔, 필자의 기대를 충족시킨 소설이었다. 그래서인가?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보다 더 흥미롭게 읽었다.

 

 

 언젠가 여친한테 물었다. 결혼이란 현실이 다가오면 우리는 지금처럼 지낼 수 있을까? 여친은 대답했다. 결혼은 그저 이름에 불과한 것이라고. 사랑을 결혼이란 이름에 가둔다고 사랑의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라고. 오히려 결혼이라는 의식은 우리의 사랑을 더 공고히 다져줄 것이라고. 이상주의자인 그녀였기에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녀와 상보적인 가치관을 지닌 필자. 곧바로 반문했다. 결혼은 일상의 공유를 뜻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몰랐던 혹은 지금의 연애관계에선 알 수 없었던 두려움이 발생하지 않을까? 그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는 보통의 커플이 아니다! 자그마치 8년을 같이 한 커플이다!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태다! 아까도 말했듯이 결론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우리는 특별한 커플이기에 결혼을 해도 특별할 것이다! 오글거렸다. 하지만 기특했다. 그리고 설득 당했다. 우리 둘은 결혼해도 타(他) 커플들과는 다른 특별한 부부로 남겠지. 일상이 개입한다 하더라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충실히 따를 수 있는 특별한 커플.

 

 

 이러한 믿음을 되뇌고 이 책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책을 다 읽어갈수록 이 믿음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결혼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있다는 걸 필자와 여친은 모르고 있었다. 집안일이라는 변수, 아이들이라는 변수, 외도라는 변수, 중년의 나이라는 변수 등등. 낭만적 연애 단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일상’의 변수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결혼이란 행위는 낭만주의가 아닌 현실주의로 변색되고 있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일상에 매몰되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이 정의한 결혼의 의미가 일견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결혼 :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알랭 드 보통의 결혼에 대한 일상적 통찰은 ‘5부, 낭만주의를 넘어서’에서 정점을 찍는다. 겉으로는 편리하게도 단일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 수많은 진전, 단절, 재협상, 소원한 기간, 감정적 회귀가 깔려있어 단 한사람과 사실상 열두 번의 이혼과 재혼을 겪은 라비. 결혼한 지 16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는 주인공 라비. 그로 인해 보다 성숙해진 라비. 그래서 낭만을 넘어 결혼이란 현실에 순응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라비와 커스틴.

 

 

 책을 읽기 전 되뇌였던 믿음은 이미 가루가 된지 오래였다. 그 자리는 결혼에 대한 우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믿음을 산산조각 낸 알랭 드 보통에 대한 경외 섞인 원망과 함께한 채.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다 읽은 후 다시 한 번 여친한테 물었다. 결혼이란 현실이 다가오면 우리는 지금처럼 지낼 수 있을까? 여친은 대답했다. ‘The Course of Love... ㅠㅠ.’ 사랑에 대한 집요하고도 능숙한 통찰로 독자를 이래저래 미치게 만드는 이 시대 최고의 일상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The Course of Love’)> 이었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