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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Culture Life2017. 1. 13. 18:26

홍아란에게 건네는 위로



 장면 1. 얼마 전 생활관에서 여자프로농구를 보고 있었다. 클러치 타임, 신한은행의 턴오버가 이어졌다. 신기성 감독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카메라나 마이크는 안중에도 없었다. 심한 언사로 선수들에게 강한 질책을 했다. 아직까지도 프로농구에 고압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있구나 생각했다.


 장면 2. KB 스타즈의 가드, 홍아란 선수가 임의탈퇴 신청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장면 3. 며칠 후,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이 작심발언을 했다. 홍아란 선수를 겨냥한 것 이었다. 프로선수로서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류의 발언. 그 밑에는 ‘사이다 발언' 이라는 내용의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KB 스타즈의 레전드 변연하의 뒤를 이을 가드 홍아란이 임의탈퇴를 신청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가드 홍아란이 임의탈퇴를 신청했다. 여자프로농구에서 임의탈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매년 3~4번꼴로 발생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이슈화 된 적은 없다. ‘홍아란’이란 스타급 선수가 임의탈퇴를 신청한 건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홍아란에게 마녀사냥을 가했다. 여기에 여자프로농구 최고의 감독 위성우의 작심발언까지 더해졌다. 프로의식이 결여됐다. 농구근성이 떨어진다. 연봉 먹고 도망가려 한다. 25살의 그녀가 견뎌내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비난이었다.


 단편적 소식만 접했을 땐 나 또한 홍아란을 비난하기 바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꿈도 못 꿀 억대연봉을 받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농구를 업으로 삼은 그녀가 뭐가 아쉬워서 임의탈퇴라는 결정을 내렸을까. 그러나 조금 더 알아보니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지하기로 했다.


 꼭두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반복되는 쉴 새 없는 훈련. 그 속에서 팽배한 장면 1과 같은 분위기. 시즌 내내 이뤄지는 합숙. 시즌 중에는 제한적으로 허락되는 외출·외박. 군대얘기를 하는 건가? 아니다. 여자 프로농구 얘기를 하는 것이다. 군인 신분인 나보다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프로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저런 대접을 받으며 그토록 원하던 농구를 하는 여자프로농구 선수들 이다.


 무언가의 일을 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 동기부여. 사실상 자유 없는 생활을 이어가는 선수들인데, 사실상 비인기 종목인 여자농구 판에서 농구를 하는 그녀들인데, 과연 ‘돈’하나 만으로 농구를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까? 이런 상황까지 여자프로농구를 썩혀온 농구 원로분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장면 3에서 언급된 내용들. 프로의식 결여? 근성부족? 단언할 수 있다. 홍아란에게 어울리는 말은 절대 아니다. 아마추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프로에 진출하고, 프로에서도 기량을 인정받아 국가대표까지 역임한 홍아란. 이렇게 농구를 위해 헌신한 그녀에게 위와 같은 말은 그 어떤 말 보다 모욕적인 말 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프로’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견뎌내며 성적으로 본인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나는 말한다. 프로이기 전에 사람이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사람 말이다. 홍아란이 임의탈퇴를 신청한 것은 더 이상 농구로 행복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사람인 이상 홍아란에게 비난을 가할 의무는 없다.


 마지막으로 WKBL을 비롯한 여자프로농구 관계자분들에게 한 마디 하며 글을 마치겠다.


 “프로리그는 프로선수들이 있기에 운영되는 겁니다. 프로선수들이 행복하게 농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프로리그가 존속할 수 있을 겁니다. 여자농구 팬으로서 관계자분들이 이를 인지하고 조속히 제도적 개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 글은 여자농구 팬의 입장으로서 쓴 사견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