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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2016. 9. 2. 18:28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작년 이맘때쯤, <버드맨>이라는 미친 작품으로 필자를 미치게 만들었던 이냐리투 감독. 그가 또 한 번의 미친 짓을 감행했다. 사실 미친 정도로만 따지면 <버드맨>은 <레버넌트>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휴가 타이밍이 엇갈려 이제야 보게 된, 제대로 미친 영화 <레버넌트>다.

 


 스토리는 단순한 얼개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들을 죽인 톰 하디의 복수를 꿈꾸며 죽음에서 돌아오는 디카프리오를 그린 영화다. 즉 부성애에서 비롯된 단순한 복수극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본능’이라는 성질이 결합하면서 단순함은 위대함으로 승화된다.

 


 레버넌트가 소개하는 본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부모의 애(愛)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톰 하디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을 이끌어간다. 이 일념은 자신을 죽음에서 돌아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극한의 생존 현장에서도 모든 걸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원주민 족장의 딸에 대한 愛도 디카프리오의 愛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생명에 대한 본능이다. 이 본능은 필자가 레버넌트를 보면서, 야나리투를 만나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요소이기도 하다. 레버넌트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생명’이라는 권능 앞에서 동등해졌다. 문명을 일군 존재라며,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는 백인들도, 야만하다는 백인들의 평가를 받지만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켜온 원주민들도, 심지어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멸시받는 짐승들까지. 그 어떤 생명체라도 생명 앞에서는 동등하다는, 당연하게 여겨져야 할, 하지만 잊히고 있는 진리를 멋지게 표현한 레버넌트였다. 그리고  이냐리투 였다.

 


 레버넌트의 위대함은 단지 스토리에 그치지 않는다. 혹자는 과시라는 단어를 쓰면서까지 폄하하던 기술 또한 레버넌트의 위대함을 대변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대자연. 레버넌트는 대자연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 기술적 능력 모두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자연광. 듣기로는 자연광 촬영을 위해 두 개의 세트장을 지어서 촬영했다고 한다. 한 세트장은 오전을, 나머지 세트장은 오후의 대자연을 그리기 위해서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노력은 대단한 결과물로 귀결되었다. 광활한 대자연을 가감 없이 보여줬고, 인물들의, 특히 디카프리오의 여기에 ‘광’을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

 


 촬영기술.  이냐리투 감독은 전작 <버드맨>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롱테이크를 선보였다. 그래서 당연히 이번 레버넌트도 기대를 하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이번에도 필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첫 번째는 시점.  이냐리투는 그전의 작품들과 달리 레버넌트에선 아래를 추구했다. 카메라의 시점 자체를 대부분 아래로 잡았다. 관객의 시선 또한 아래를 강요받았다. 낯선 시도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보통 영화의 시점은 관객의 눈높이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관객을 위한 작은 배려랄까? 이에 익숙했던 필자이기에 레버넌트의 낮은 시점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의 시간이 흐를수록 시종일관 낮은 시점을 고집한 그의 집념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낮은 시점은 필자에게 극한의 몰입감을 안겨줬다. 디카프리오가 물에서 허우적 될 땐 필자도 그 같은 상황에 처한 듯 했다. 디카프리오가 곰과 싸울 때 에도, 말 안에서 잘 때도, 눈밭을 기어 다닐 때도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 궁극적으로 대 자연의 가혹함, 험난함, 두려움 아니 경외감을 ‘체험’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테이크. 테이크를 길게 가져간 것 이다. 사실 이는  이냐리투 작품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특성이다. 그만큼 많이 선보인 촬영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의 활용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버드맨>의 테이크가 자연스러움이라면 레버넌트의 테이크는 긴장감으로 대변된다. 긴장감이 필요한 테이크에는 기다렸다는 듯 긴 테이크가 등장했다. 영화 초반의 전쟁 씬, 중반의 디카프리오 추격씬, 종반의 최후의 결전 씬. 끊김 없이 돌아가는 카메라에서 압도적인 긴장감이 피어났다.

 


 연기. 연기는 뭐.. 필자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혹자의 말로 이를 대신하겠다.

 


“톰 하디,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수상을 미리 축하한다.”

 


 언젠가부터 영화의 중반에 이르면 그 후의 전개가 예상되는 일이 허다했다. 처음에는 이것 또한 영화 보는 눈이 생겼다고 억측하며 흥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따위도 맞출 수 있는 전개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라는 생각 또한 불현 듯 솟아났다. 이런 생각이 무르익을 때 쯤  이냐리투가 나타났다. 보통의 생각들을 뛰어넘는, 영화의 극한을 추구하는 그의 철학, 이를 관철시키는 그의 능력. 극찬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벌써부터 그의 작품이 기다려진다.

 


 이상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였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