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능 연대기
수능.
두 번 봤다.
그다지 흑역사라 생각하지 않는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
위 말이 진리로 여겨진 때 수능을 겪은 나니까.
첫 번째 수능.
자리는 좋았다.
앞에서 두 번째 자리. 더구나 중앙 라인.
잘 볼 것 같았다.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쏠리는 듯 했다.
망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망했다는 말 보단 적절했다는 말이 어울린다.
고3 때 내 모의고사 성적은 2-3등급을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꿈은 컸다. 상위권 대학만 바라봤다.
수시 발원서질을 하고 모의고사와 비슷한 성적을 받았다.
가채점을 한 뒤 재수하겠다고 했다.
정시 따위는 쓰지도 않았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논술은 다 보러 갔다.
그때도 글빨이 먹혔나 보다.
일반전형 컷임에도 예비번호 받은 대학이 꽤 됐으니.
현실은 재수!
두 번째 수능.
전에 밝힌 적 있지만 내 스무 살은 없었다.
청춘의 스무 살, 꽃다운 스무 살.
그딴 건 없었다. 단지 좁은 재수학원에서 공부만 죽어라 했던 기억밖에 없다.
나는 눈물이 적다.
그러나 아버지가 두 번째 수능날, 나를 고사장으로 데려다 줄 때 울었다.
펑펑 울었다.
순간 선행반서부터 수능 전 날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신기한 경험.
그렇게 아버지와 마지막 포옹을 하고 수능을 보러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는 개판.
오른쪽 맨뒤, 맨 끝. 쌀쌀한 입시한파 때문에 추워 죽겠는데
가장 추운 자리. 폭망의 기운이 들었다.
언어영역이 끝났다.
100점의 기운이 들었다.
막힌 문제가 없었다.
수리영역이 끝났다.
수리는 내 취약종목. 불안했다.
그래도 1등급은 간간히 나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1등급은 나올 듯 했다.
간당간당.
(훗날 x같은 실수 한 걸 알았을 때 자살하고 싶었다.)
점심을 먹었다.
재수라는 짓을 함께 한 고딩동창들이랑 같이 먹었다.
물론 다 못 먹었다.
목구멍이 소화하지 못했다.
긴장감을 풀 수가 없었다.
외국어영역이 끝났다.
빈칸추론이 어려웠지만
빈칸에서 좀 틀리고 나머지 다 맞는
괴상한 전략으로 문제를 푸는 나이기에
점수는 괜찮게 나올 듯 했다.
사회탐구영역이 끝났다.
언수외 잘 본 듯한 느낌이 있었다.
자만했다.
안 풀리는 문제들이 많았다.
역시나 폭망느낌이 들었다.
아쉬웠다.
제2외국어영역이 끝났다.
나는 한문을 봤다.
중요한 과목이 아니기에
대충 봤다.
그래서 결과도 대충 본 성적이 나왔다.
그렇게 내 두 번째 수능은 끝났다.
역시나 수시는 예비만 더럽게 받고
광탈했다.
정시를 통해 지금 학교에 왔다.
후회는 없지만 아쉬웠던 두 번째 수능이었다.
내 수능 연대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수능.
수능이란 두글자만 보면 아직도 설렌다.
다시 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그리고.. 수험생들 생각이 난다.
괜스레 그들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그들의 감정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쨌든.
그들에게 이 말 한마디만 전하고 싶다.
수고했어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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