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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9.25 벤야민의 사유(思惟) - <일방통행로>
Book2016. 9. 25. 13:28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철학자) 저 



 

 파릇파릇한 대학교 1학년 시절, 필자는 문학에 취해있었다. 현실과 비슷하지만 다른 매력에 끌렸었다. 그래서 교양도 문학 관련 수업으로 올인 했다. 인도문학, 영미문학, 고대문학, 중세문학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종류의 문학 강좌를 수강했다.

 


 여러 문학들을 접하면서, 문학 종류에 있어서도 필자의 기호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서양, 현대 문학이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평소 현실주의, 극단적으로는 냉소주의, 염세주의와도 가까이하는 필자의 가치관과 맥락을 같이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소개할 ‘일방통행로’와 작가 ‘발터 벤야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발터 벤야민이라는 작가를 소개 해 준 교수는 벤야민을 이와 같이 평가했다.

 


“20세기 최고의 사유가.”


 

 교수의 수업을 듣던 중, 이 말을 들었을 때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그의 ‘기술복제’ 이론은 독창성 있고 혁신적인 이론이라 할 만 하다. 그러나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엔 뭔가 아쉽지 않나? 종강 후 교수에게 이러한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며칠 후 답장이 왔다. 이 책을 읽어보면 자신의 평가에 동의할 수 있을 것 이라 했다. 그 책이 바로 이 책,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였다.

 


 이 책에 대한 필자의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오프라인에서 구하기 힘들었을 뿐더러 책값도 분량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쌌다. 무엇보다 부제목이 가장 마음에 안 들었다.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얼마나 거창한 내용을 담았기에, 이런 거만한 부제를 붙였던 것 일까? 하지만 책의 첫 문장을 읽고 보니 거만했던 것은 필자였음을 알게 됐다.

 


 ‘지금 삶의 구성은 확신보다는 훨씬 더 사실들의 권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거의 한번도, 단 한 번도 확신의 토대가 되어보지 못한 사실들에 의해.’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필자 나름대로 사유해보겠다. 우리네 삶의 구성은 훨씬 더 사실들의 권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훨씬 더 사실들의 권역이란 그 자체로 자명한 ‘진리’를 뜻한다. 의심할 수 없는, 불변의, 건드릴 수 없는 그 ‘진리’다. 이 진리에 대해 발터 벤야민은 일침을 가한다. 아니, 진리라고 인정하는 우리에게 일침을 가한다. 과연 이 진리들이 확신의 토대에 올라가 본 적이 있나? 수많은 진리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데 우리는 그를 ‘진리’라는 언어에 속아 그것들을 확신의 토대, 즉 확신의 심판대에 올리지 못했다.

 


 발터 벤야민의 10챕터의 구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과 관련된 모든 질문은 우리의 전망을 가리고 있는 나뭇잎들처럼 아직 손도 못 댄 채 그대로 뒤에 남아있지 않은가?’에서 다시 한 번 이 사유를 강조한다.

 


 이 문장들을 읽는 순간, 그리고 이 문장에 관해 사유를 하는 순간, 왜 그가 최고의 사유가인지 알게 됐다.

 


다른 문장 몇 개도 소개해 보겠다.



 ‘설득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아이를 만들 능력이 없다.]’



 설득은 타인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바뀌게끔 유도하는 일종의 대화의 기술이다. 하지만 설득에는 한계가 있다. 상대방의 겉만 건드릴 뿐, 속은 건드리지 못한다. 상대방의 가시적인 입장만 변화시킬 뿐, 그의 관념 혹은 관점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 이다. 그래서 발터 벤야민은 설득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본 것 이다.

 


 13번지 챕터의 책-매춘부 비교도 인상 깊었다. ‘책과 매춘부는 침대로 끌어들일 수 있다.’ 책은 우리에게 잠을 유발시켜 우리를 침대로 끌어들인다. 매춘부는 성의 욕망을 유발시켜 우리를 챔대로 끌어들인다. ‘책과 매춘부는 많은 후손을 만든다.’ 책은 저자의 추종자들을 만든다. 추종자들은 시대에 관계없이 저자의 이론이나 관점을 이어나간다. 즉 그들은 저자의, 책의 후손이 된다. 매춘부는 말 그대로 많은 후손을 만든다.

 


 로지아 챕터 중 선인장 꽃의 구절을 읽을 때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필자가 여친과 대화 나눌 때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해놓았기 때문이다. ‘정말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말다툼 할 때 애인이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하면 기뻐한다.’

 


 이 밖에도 필자의 사유를 자극시킨 챕터, 구절들이 많았다. ‘마차 세 대 까지 주차 가능’에선 성매매를 날카롭고, 우호적인 방식으로 비판했다. ‘사무용품’에선 사장들의 숨겨진 위엄, 그리고 그것을 상징하는 장치들을 보여줬다. '세금상담‘,’카이저 파노라마 관‘에선 물질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에 섬뜩한 비유를 통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필자는 글의 서두에서 이 책의 분량이 적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군대에서 읽은 책 중, 실질적인 도움은 가장 많이 되는 책 이었다. 철학과 사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건설적인 책 이었다.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거만한 부제가 아닌, 일방통행로를 대표할 수 있는 최고의 부제였다. ‘20세기 최고의 사유가’라는 칭호 또한 발터 벤야민에게 단 1%도 아깝지 않은, 그의 능력에 걸 맞는 최고의 칭호였다.

Posted by AC_C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