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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8 뭐라도 된 사람들의 조언 - <뭐라도 될 줄 알았지>
Book2016. 12. 8. 19:03

뭐라도 될 줄 알았지

 

- 이재익·이승훈·김훈종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들의 술자리 화두는 달라졌다. 수능이 끝났을 땐 대학 얘기 뿐 이었다. 대학을 진학했을 땐 군대고민만 했다. 군대가 끝나갈 무렵인 지금, 이제는 취업, 즉 먹고사는 문제였다. 평균이하로만 구성된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대학 ·군대 문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끼리 무의미한 토론만 계속했다. 답이 없는 얘기만 반복됐다. 결국 이렇게 된 우리의 신세를 한탄하고 이 지경까지 만든 사회를 원망했다. 그 때 의경에 복무 중인 한 녀석이 말했다. “또라이들아, 우리끼리 탁상공론 한다고 문제가 해결 되냐. 간단히 생각해. 뭐라도 돼 있겠지.” 맞다. 결국 시간은 흐르므로. 대학도 어떻게 해결됐고 군대도 어찌어찌 갔으니 취업도 뭐.. 돼 있겠지! 한껏 취기가 오른 우리는 저만한 솔루션이 없다며 또 다시 건배를 외쳤다.

 

 

 지금 추억하면 정말 병신 같다. 왜 저런 근거 없는 낙관론에 환호를 했는지. 특이한 건 뭐라도 되겠지 는 우리만 생각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도 자신들이 뭐라도 될 줄 알았나보다. 오죽하면 책 제목이 <뭐라도 될 줄 알았지>일까. 인정하긴 싫지만 저 말에 감복한 적이 있어서, 한때 가치관으로 삼았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책에 흥미가 갔다. 이 흥미는 책 구입으로 직결됐다.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정의하면 불혹의 나이를 넘은 세 명의 PD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공유한 책이다. 정의만 보면 아재들이 싱싱한 젊은이들에게 훈계질 하는 책으로 비춰질 만하다. 그러나 이들은 서두에서 밝힌다. 훈계질 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책 디자인도 그렇고 팟캐스트에서 떠드는 이들의 성향도 그렇게 훈계질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를 염두하고 아재들이 진행하는 수업 속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시간. 소설가이자 라디오 PD 이재익 선생의 수업이었다.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을 듣고 있으면 필자와 가장 흡사하다고 느낀 사람이 이 이재익이다. 시니컬한 감성에 항상 견지하고 있는 비판적 시선, 그러면서 은근히 순응적인 역설적 매력. 이재익의 가치관은 이 책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개소리다’부터 삶의 지침이나 원칙은 없어도 된다고 얘기하는 것 까지. 도덕이나 윤리 따윈 개나 줘버린 그의 태도가 잘 묻어있다.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모든 줄을 다 지키면서 사는 삶은 답답하다.’ 필자 또한 야매 인생을 지향하며 살아왔기에 이 말에 큰 공감을 표했다. 덧붙여 자신이 얼마나 어긋나 있는 지에 대한 반성도 하라 조언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니. 동의하는 바였다.

 

 

 두 번째 시간. 웹툰작가와 라디오 PD를 겸직하는 이승훈 성생. 이승훈은 세 수업 중 가장 실용적이었다. 눈에 띤 건 경제시간. 돈이 있어야 힘이 난다는 그의 지론처럼 온통 돈 이야기뿐이었다. 그 중 경제원칙과 지불요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가 제시한 그만의 지침들은 쉽게 돈을 벌어 그릇된 낭비를 반복하던 필자에게 꽤나 도움이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아플 적이 거의 없었다는 말고 공감됐다. 군대에서 아프면 가장 서럽다는 말이 있다. 다행히 필자는 운동을 해서 그런지 서러웠던 적은 없다. 그 밖에도 세상에서 사랑받으려면 노력해야 된다는 코멘트도 흥미로웠다.

 

 

 세 번째 시간. 예능PD에서 라디오PD로 전직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김훈종 선생이었다. 책 출판 과정에서 어머니의 투병생활을 지켜본 그인 만큼 이번 수업에선 생(生)과 사(死)에 관한 담론이 가득했다. 중학생 때, 국어선생님이 문제를 냈다. 삶은 ○○로 가는 기차다. ○○는 무엇일까? 반 친구들이 여러 답을 외쳤으나 돌아오는 건 틀렸다는 대답 뿐. 맨 뒷자리에서 퍼질러 자던 필자가 말했다. 죽음이요. 우리의 시작은 삶, 끝은 죽음이란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대답. 뭔 개소리냐며 애들이 핀잔을 줬다. 그때 국어선생님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답. 필자 또한 당황했다. 충격도 받았다. 그래서인가.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문장이다. 김훈종의 글을 보니 그 또한 이 말에 동의하는 듯 했다. 모든 걸 해체해야, 모든 걸 버려야, 모든 걸 내려놓아야 비로소 보인다고 말하는 그. 우리네 인생은 결국 덧없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전부라 말하는 그. 가볍고도 무거운 존재론적 고찰에 관한 수업이었다.

 

 

 책을 다 읽었다. 결론이 났다. 이 책은 훈계질의 책이다. 하지만 기존의 그것과 달랐다. 뭣도 없는 꼰대들이 아닌 무언가를 가르칠 자격을 지닌 선생들의 훈계였으므로. 덕분에 유쾌하고 긍정적인 수업을 즐길 수 있었다. 뭐라도 되겠지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뭐라도 된 사람들이 선사하는 인생수업, 이재익·이승훈·김훈종의 <뭐라도 될 줄 알았지>였다.



ps. 씨네타운 나인틴을 생각해 조금은 거침없이 써봤습니다..

Posted by AC_CliFe